한국일보

힘을 키우자

2019-09-2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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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4일까지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에서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이 열렸는데 시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가 고종황제와 오찬을 함께 했을 때 먹었던 메뉴가 소개되었다. 왕이나 귀족들이 먹는 신선로, 고기와 채소류가 섞인 골동면, 숭어찜, 편육, 생선전, 전복조림, 누름적, 두텁떡, 약밥, 숙실과, 원소병 등 17가지 요리가 황금색 식탁보에 황실문양으로 장식된 그릇에 담겨졌다.

시어도어 루즈벨트(1858~1919)는 1900년 초 아시아 각국으로 외교사절단을 보냈는데 앨리스는 고종의 초청으로 1905년 9월20일 관료 18명을 이끌고 대한제국을 찾았다. 고종과 황태자 신분이던 순종은 외세의 침략에 꺼져가는 나라의 불씨를 살리고자 절박한 심정으로 강대국 사절단을 맞아 온갖 정성을 다했다. 혹시나 미국이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도움을 줄 까해서였다.

그런데 이미 두달 전인 7월29일 일본을 방문한 미 육군 장성 윌리엄 태프트는 일본수상 가쓰라와 만나 가쓰라 태프트 조약을 맺어 미국이 필리핀을 갖는 대신 일본의 조선 합병을 암묵적으로 합의한 바였다.

또한 앨리스는 홍릉을 방문해서는 왕릉 호위무사 말 석상에 냉큼 올라타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현재 코넬대학교 도서관 귀중품 컬렉션에 남아있는데 승마복 차림에 말채찍을 들고 말 조각상에 올라타고 고개를 뒤로 제낀 무례한 모습이다. 홍릉은 1895년 일제 낭인들에 의해 비참하게 시해당한 명성왕후를 1897년에야 유해 조각을 모아 안치한 곳이었다.


그 앨리스는 루즈벨트의 첫번째 부인이 낳은 딸이었다. 재혼후 자녀 다섯을 더 두었지만 이 딸을 낳은 지 이틀만에 사망한 첫부인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루즈벨트의 아킬레스건인지 앨리스는 아시아 약소국을 돌면서 ‘미국 공주’로 환대받았고 오만하게 한 세상을 살다가 96세로 사망했다.

작년에 루즈벨트 일가가 살던 롱아일랜드 사가모어 힐 저택에 가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농장에서, 집안에서 뛰어노는 사진 속에서 죽어서도 비난받는, 이 예의 없는 장녀가 누구인가 하고 찾았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지만 아시아 문제에 관한한 대체로 일본편을 들었고 그 딸이 조선을 다녀간 두달 후인 1905년 11월17일 일제로부터 을사조약을 강요당했다. 조선은 국력이 약해서, 자신을 지킬 힘이 없어서였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우리 삶의 주위에서도 힘이 없고 가진 것이 없으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당하고 업신여김에 멸시를 당하곤 한다. 약소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소수민족인 한인사회, 개인의 삶도 조금 더 힘이 센 타인종 사회, 권위, 재산, 지위 등 가진 것이 많거나 높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시달린다.

그러자면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 힘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힘을 키우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종 전후 독립운동가의 말을 들어보자.

단재 신채호는 ‘을지문덕전’,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 등 한국사 영웅들의 이야기를 펴내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한국 민족의 실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애국심이 얼마나 중요한 지와 ‘조선상고사’를 통한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강조했다.

도산 안창호는 ‘스스로 힘과 실력을 키우고 그 실력을 기반으로 해야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며 실력양성론을 주장했다. 그의 교육입국론은 여러 학교의 설립과 양성에 도움을 주었다, 인재양성만이 식민통치에 빠진 한국을 독립시킬 수 있다고 했다.

미주 한인들은 이민의 첫 번째 목적이 대부분 자녀교육이다. 그래서 ‘교육으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안창호의 교훈을 잘 지키고 있는 편이다.

비록 가진 것 없고 자녀가 잘 나가지 않더라도 근면성실하게 일해 번 돈으로 정직하게 생활해 오고 있다면 그 또한 누구도 나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이는 예의와 교양의 힘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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