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석

2019-09-25 (수)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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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의 맑은 밤하늘에 걸려있는 크고 둥근 추석 달이 유난히도 선명하다. 달을 쳐다보고 있으면 고즈녁해 진 마음이 어느새 고향으로 달려간다.

어릴 적 추석날은 설날과 더불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었다. 엄마가 새로 사주신 ‘사지 쓰봉’을 입고 차례 지낼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한 부엌과 대청마루를 드나들며 밤이며 다식이며 과일 등 맛있는 것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부엌에 들어가면 큰어머니께서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진다’고 웃으시며 부치던 전을 한 조각 먹어보라고 주시곤 했다. 솔그루와 장작으로 불을 때는 부엌은 나무 타는 매캐한 냄새와 전부치는 냄새로 가득 찼다. 추석 전날은 서울에서 작은 아버님 내외분과 사촌들이 온양으로 내려와 집안은 더욱 활기가 넘쳐 났다.


추석날 아침이 되면 검은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차려 입으신 아버님께서 가느다란 붓으로 지방을 쓰셨다. 아이들도 벽장을 열고 병풍을 꺼내오고 촛대와 향로를 내오는 등 일을 거들었다. 여자들은 작은 상에 차례 상에 올릴 음식을 가득 받쳐 들고 부엌과 안방을 분주히 오갔다.

지방 쓰기와 음식준비가 모두 끝나면 고조부부터 차례를 모시기 시작한다.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이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시면 아이들은 뒤에서 어른들을 따라 두번 절을 하고 여자들은 네번 절을 했다. 절을 올린 다음에는 아버님이 먼저 조상님들께 잔을 올리시는데 아버님이 받쳐든 잔에 작은 아버님이 술을 가득 따르시면 아버님은 잔을 향로 위에 두어번 돌리신 다음 조심스럽게 뫼와 탕 앞에 놓으셨다.

아버님 다음에는 장손인 형이 잔을 올렸다. 잔을 올리고 절을 한 다음에는 밥그릇 뚜껑을 여는 개함을 하고 상 앞에 한참동안 엎드려 부복을 한다. 아버님이 에헴 하고 헛기침으로 신호를 하실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하는데 그 엄숙한 순간에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아이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참다못해 그예 킥킥거리고 터뜨려버린다.

복이 끝나면 다시 두 번 절을 올리고 아버님이 ‘숭냉 올려’ 하고 지시를 하신다. 작은 소반에 받쳐들어온 물그릇인 ‘숭냉’을 뫼 옆에 놓으시고 숫가락으로 메를 세 번 떠내어 ‘숭냉’에 담으신 후 다시 절을 두번 올리면 차례가 끝난다.
엄숙하던 분위기는 음식 내가고 들어오는 소리와 이야기 소리로 왁자지껄 해진다. 다음 제사를 준비할 때 까지 10여분은 말하자면 휴식시간인데 자연스럽게 대청마루 건너 할머니 방에 모여앉게 된다.

할머니는 서울에서 내려온 손자와 손녀들을 특히 귀여워하셨는데 방안 그득히 앉아 이야기하는 자손들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시며 담배를 피우셨다. 아이들은 차례상에서 물리고 나온 약과며 밤이며 대추 등을 비로소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아버님이 지방을 증조부로 바꿔 붙이시고 차례상도 다시 음식들로 채워진다. 같은 의식이 되풀이 되고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까지 차례가 모두 끝나면 가족과 친척이 둘러 앉아 아침을 먹고 성묘를 간다.

온양에서 서북쪽으로 삼십리 밖에 있는 염치면 염성리 낮으막한 산꼭대기에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산소가 있다. 먼저 할아버지 산소 앞에 간단한 주과포를 차려놓고 절을 올린 다음 오른 쪽으로 사오백 보 떨어진 큰 아버지 산소로 이동한다. 성묘 후 어른들은 산지기와 진지하게 무슨 이야기인지 나누시고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거나 밤을 주웠다. 추석날은 햇살마저도 유난히 맑고 투명해서 여늬날과 달라보였다.

이제는 서울서 내려온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보시고 흐뭇해 하시던 할머니도 할아버지 산소에 묻히셨으며 앞서서 산소에 오르시던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도 그 옆에 묻히셨다. 또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진다’고 웃으시며 부치개를 주시던 큰 어머니도 큰아버지 산소에 함께 묻히신지 오래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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