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람

2019-09-23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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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대기 현상으로 일어난다. 바람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허리케인, 토네이도, 타이풍 등 생명을 위협하는 강풍들이 있고, 산들바람 훈풍(薰風)같은 약하고 기분 좋은 바람도 있다. 회오리바람은 위협적이다. 땅의 사물을 끌어안고 하늘로 올라가는 파괴적인 바람이다.

한국속담에 “바람따라 구름가고 구름따라 용이 간다.”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이 정답게 붙어다니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바람이 불다불다 그친다.”는 표현도 있는데 성이 나서 펄펄 뛰어도 내버려두면 제풀에 그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 사람 바람났다.”고 하면 전혀 뜻이 달라진다. 자연현상이 아니라 이성교제를 가리킨다. “바람피운다”는 말은 정당한 남녀 사이의 교제가 아니라 외도(外)를 말한다. “바람 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라는 우리 말 표현은 확고한 주관 없이 되는대로 내맡긴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바람이 불어야 배가 가지.”라는 표현은 선행조건이 해결되어야 목적이 달성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니 한국어를 제대로 알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명종(明宗) 때 피리의 명수로 이 억순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같은 시대에 영변 기생이며 가야금 명수인 초향이 살았다. 이 억순이 영변을 방문하여 거지 차림으로 초향이네 집 문턱에 누워있었다. 밤이 되자 밤바람을 타고 초향의 가야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이 억순은 그 가락에 맞추어 피리를 불었다. 초향은 바람결에 밀려오는 피리 소리를 듣고 대번에 이 억순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그 후 이 두 명인은 삼천리 방방곡곡을 바람부는대로 흘러가며 가야금과 피리의 이중주(二重套)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성경에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잠언10:25)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선악을 가리는 신의 심판을 회오리바람으로 비유한 말씀이다. 회오리바람이 집 한 채도 하늘 높이 끌어올렸다가 박살을 내듯 신의 심판이 가혹하리라는 교훈이다. 사자성어(四字成語)에 추풍낙엽(秋風落葉)이란 말이 있는데 차가운 가을바람에 잎들이 하염없이 떨어진다는 갑작스런 몰락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서양속담에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추운 북 유럽의 노르웨이 덴마크 등지의 사람들이 따뜻한 땅을 찾아 대서양을 남하하기 위하여 조선술, 항해술을 일찍 발달시켜 유럽 여러 민족을 점령하였다는 역사를 배경으로 역경이 오히려 전진의 기회가 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최근의 태풍 링링은 중국 여자의 이름이고, 태풍 도리언은 남자의 이름이다. 옛날의 태풍은 주로 여자 이름으로 지었는데 근래는 남자의 이름도 심심찮게 등장시키는 것이 여자만 독한 것이 아니라 남자도 독해졌음을 가리키는 말 같다.

‘바람잡이’라고 하면 또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시골 장터 같은데서 물건 파는 사람을 도와 군중속에 끼어서 물건이 믿을만하고 가격이 싸다는 것을 응원하는 사람이 ‘바람잡이’이다. 바람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 한이 없겠는데 이런 데에 한국어의 묘미도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인류의 급선무(急)로서 ‘3R운동’을 제창한다. 첫째 R는 Reduce이다. 줄이자는 것이다. 쓰레기 줄이기가 시급한 과제이다. 많이 사들이니까 쓰레기도 많아진다. 절제생활이 필요하다. 많이 만들고 많이 쓰고 많이 버리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특색이기도 하지만 지구는 좁고 대기는 오염되고 있다, 덜 사고 덜 써야한다. 둘째 R는 Reuse 이다. 다시 쓰자는 말이다. 내게 작아진 옷이면 나보다 체격이 작은 사람에게 주면 된다. 선진국가들은 쓰레기가 버릴 데가 없어서 거의 전쟁이다. 셋째 R는 Recycle이다. 재활용운동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이 문제는 인류의 존망이 달린 심각한 문제이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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