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용적 사랑

2019-09-23 (월)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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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에는 약간이라도 파손된 물건은 그냥 집어 버리려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파손된 것을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나는 그것을 고칠 시간이 없어. 차라리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 것을 사자’라고 말합니다. 흔히 우리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대합니다. ‘그래, 그 사람은 술버릇이 나빠’, ‘그 여자는 우울증에 빠져있어, 그 사람은 사업하다가 망했데… 이런 사람들한테 휘말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야’라고 우리들은 말합니다.”
-헨리 나우웬 ‘영혼의 양식'에서.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평가하는 사회는 병들고 분열한다. 서로 수용하고 상보할 때 사회는 건강하며 생성한다. 창의적 문명의 발흥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이나 연약함을 받아주는 수용적 사랑 집단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용적 사랑으로 충만한 창조적 크리스천 소수가 고등 문명을 선도했다는 것이 선교 역사의 핵심이고 아놀드 토인비의 문명 발달이론이기도 하다. 막강한 로마제국을 기독교화 한 초기 기독교사회가 좋은 예다.


예수께서 이방의 땅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다섯 남편에게 버림 받은 상한 갈대 같은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방어적이어서 예수의 접근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예수는 끈기 있게 여인의 닫힌 마음을 두드리며 불안한 내면에서 분출하는 한 맺힌 넋두리를 다 들어주었다.

상한 갈대라도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죽지 않는다. 반복되는 우 물 물 긷는 것 같은 단조로움과 공허감에 사로잡혔던 여인이 구원받은 것은 예수의 끈질긴 수용적 사랑과 긍휼에 믿음의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로버트 래슬리는 말했다. “세상은 그 여인을 원 밖으로 내 몰았지만 예수는 그 여인이 원 안으로 넉넉히 들어올 수 있도록 더 큰 원을 그려 놓으셨다.”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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