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인은 아름다움을 생각하라?

2019-09-20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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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를 맞아 새로운 학생들의 낯선 얼굴을 대하는 즐거움은 교직에 오래 종사한 분들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에 가득찬 젊은 눈동자들이 다소 비현실적 이지만 아름답고 그들의 높은 이상이 또한 부럽기만하다.

나는 강의를 시작하기 전 약 10분 정도 학생들의 용기를 북돋우는 이야기를 한 후 강의를 시작한다. 오늘의 강의의 주제는 “도덕적 상대주의”였지만, 그 것을 시작하기 전에 톨스토이(L. Tolstoy)가 말한 “삶을 행복하게 하는 열가지”를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그 중의 하나였던 “청년들은 원대한 꿈을 꾸고, 노인들은 아름다움을 생각하라”는 것을 부연해서 이야기를 했다. 옛부터 스승들과 현인들은 항상 젊은이들을 향해 “원대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높은 이상를 가지고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우라는 것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하며 힘써 노력하여야, 살고 싶어하는 삶을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그 요점일 것이다.

그런데 “노인들은 아름다움을 생각하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 일까? 물론 이것은 새학기를 시작한 젊은 학생들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 이다. 나이가 지긋하고 인생의 경험이 쌓인 분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한 번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노인에 대해 떠도는 길고 짧은 글들을 읽어보면 대개는 노인이 되면 이것도 하지말고 저것도 하지말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사람들이 원치 않거나 잔소리 많고 주책없는 노인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할 때에만 간단하게 얘기를 하라는 것 인데 …, 과연 그럴까? 노인이 된다는 의미는 단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도상에서 배우고 경험하고 성공과 실패 기쁨과 고난의 쓰고 단 맛을 모두 맛보며 쌓아온 지식과 지혜의 보고로써 노인들의 삶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좋던 싫던 60이 되면 노인으로 살아갈 준비를 해야하는 나이라 생각한다. 은퇴를 생각해야 하고 새로 다가오는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계획을 자신의 능력에 맞게 설계를 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유튜브에 떠도는 농담중에 “껄껄껄”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한 지인이 보내준 것을 보니, ‘더 사랑 할껄, 더 참을 껄, 더 베풀껄”이라는 후회감을 표현한 것 이었다. 껄껄껄 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자신을 단련하라는 경고같은 느낌도 들었다.

독일에 갔을 때 아우디(Audi)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모두 고등학교를 어제 졸업했을 듯한 젊은 사람들 이었다. 가끔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안내하는 아가씨에게 물었더니, 은퇴한 분들이 자원해서 젊은 기술자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평생 습득하고 경험을 통해 얻은 기술을 전수하는 것인가? 아니라고 했다. 직장생활과 노동현장의 직업윤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대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자원 봉사의 아름다움이 돋아 보였다.

우리 대학에서 은퇴한 노교수가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문학자로 국내외에 그 이름이 잘 알려진 분인데, 은퇴후에는 자신의 정원과 화단 뿐만 아니라 이웃과 공원의 꽃과 나무를 정성스럽게 가꾸는 분 이었다. “자라는 모든 것을 사랑하라”는 토키엔 (J.R.R. Tolkien) 의 한 마디가 은퇴후 삶의 좌표였다고 한다. 어느 덥던 늦은 봄날 공원의 장미를 가꾸다 장미원속에서 돌아 가셨다고 한다 “더 사랑할걸” 후회함이 없게, 자신과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길인 것 같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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