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정

2019-09-18 (수)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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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오 헨리의 단편 (The Gift of Magi) 에는 매우 가난하게 사는 한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되어 서로 선물 사 줄 돈이 없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출근한 사이에 여자는 그의 긴 머리를 팔아서 남자의 금회중 시계에 달아줄 금시계줄을 사고 남자는 또 회사에서 자기의 귀중한 금시계를 팔아서 여자가 늘 가지고싶어 하던 머리 장식 빗을 사는 서글프면서도 흐뭇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녀 애정관계의 국면을 조사하는 심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이상의 이야기에서와 같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상대에게 주고 싶어하는 국면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남녀에게 있다고 한다. 그와함께 따르는 또 한 국면은 상대가 잘되기를 원하고 상대를 응원하고 치켜주는 면이라고 한다.

이같은 국면은 소위 상대를 염려해주는 완전히 상대방 중심적인 면으로서 이 면은 두 남녀의 애정관계가 충분히 무르익은 뒤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지적돼있다.


세계의 종교에서도 남녀 애정 관계는 매우 자주 쓰이는 메타포이다. 유대교 및 기독교에서도 신과 예수는 남편이고 이스라엘과 교회는 아내라고 하여 그 관계의 성실성을 강조한다.

불교 시인 만해 한용운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잊으려면 생각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지도 말고 생각도 말아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 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구약성서 '아가서'에는 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른아침 포도원에 나가 포도나무 꽃이 피었는지 석류나무 꽃이 멍울 졌는지 보고,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님에게 바치리다….”
남녀의 사랑을 고전 철학에서는 에로스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가장 초보요 기본이 되는 사랑은 이성의 아름다운 몸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학문과 지식에 대한 이데아를 사랑하는 사랑 이라고 되어 있다. 지혜와 친구에 대한 사랑은 필레오 라는 말을 쓰고 가족에 대한 사랑은 카리타스라는 말로 표현했다. 플라톤의 소위 이상적 사랑은 에로스 사랑의 연장이었다.

심리학자 프롬은 애정은 달콤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기예 (Art) 라고 했다. 또 심리학자 융은 사랑의 모티브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깔려있는 원형이라고 했다. 과학과 기술 문명의 지나친 발달은 인간을 그의 원형에서 격리 시키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장래는 암담해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심리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는 만나면 좋아하는 사이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를 이룬다고 한다.

여자는 점점 남자와 같이 되고 남자는 점점 여자와 같이 돼간다고 말한다. 그러니 오 헨리와 한용운과 아가서의 글로 주문을 만들어서 큰소리로 외우면서 양주를 부어놓고 고사라도 한 번 지내면 어떨까 한다.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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