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물고기 죽이기’

2019-09-17 (화) 나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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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며칠 전 생애 최초로 바다낚시를 갔다.
전날부터 속이 안 좋던 나는 결국 체해서 배 타는 내내 양동이를 붙잡고 있었고, 아들은 태풍의 영향으로 높아진 파도를 ?바이킹처럼 즐기면서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 집으로 가져 온 죽은 물고기를 보니 대학교 때 생물 시간이 떠올랐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아 죽여서 배를 갈라 물고기 내장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큰 통에 움직이는 물고기를 다들 거침없이 손을 넣어 잡았다. 포유류를 제외한 다른 종을 무서워하는 나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 친구에게 부탁했다. 친구는 망설임 없이 물고기를 잡아 내 실험 쟁반에 놔줬다. 순간 물고기가 튀어 올라와 바닥에 떨어졌다. 파닥거리는 움직임이 없어진 뒤에 겨우 다시 실험 쟁반에 올렸다. 하지만 물고기는 완전히 죽지 않고 살짝살짝 움직였다.

“물고기 머리를 망치로 때려 기절시킨 뒤에 해부하면 돼.”
조교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만 하고 사라졌다. 핀셋으로 물고기를 실험대 구석으로 밀고 망치로 머리를 쳤다. 물고기의 움직임이 실험대를 통해 전해졌다. “으악” 소리를 질렀다. 조교가 와서 한마디 했다. 주변을 보니 나만 유난을 떨고 있었다. 다시 스스로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를 외우며 핀셋으로 물고기를 고정하고 실눈으로 최대한 물고기 머리를 보며 망치로 머리를 때렸다.

지나가던 조교가 한마디 했다. “손으로 잡아야지. 뭐 하는 거야? 새것 한 마리 가져다 다시 해. 마지막이야.” 눈을 뜨고 보니 물고기를 누르던 핀셋이 배에 구멍을 냈다. 다시 친구에게 부탁해서 물고기를 실험 쟁반에 담았다. 하지만 도저히 물고기를 손으로 잡고 머리를 망치로 때려죽일 순 없었다. 그래서 그냥 창가에 놨다. 말라 죽으라고.


10마리나 되는 싱싱한 도미, 우럭. 고등어를 보니 창가에서 말라 죽었던 물고기가 생각났다. 난 여전히 머리 달린 생선을 만질 수 없다. 남편이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빼줬다. 옛날 같으면 비늘도 못 벗기지만 아들이 잡은 물고기라, 용감하게 비늘을 긁고 손으로 생선을 잡아서 씻었다.

사람마다 좋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게 다르다. 나는 머리가 없는 생선으로 요리를 할 수 있고, 남편은 생선을 다듬는 건 할 수 있다. 아들은 요리도 손질도 못 하지만 낚시에는 재능이 있어 보인다. 매운탕은 아들의 낚시 운과 남편의 생선 손질, 나의 솜씨가 어우러지며 정말 맛있었다. 너무 맛있다는 말에 아들은 오늘 잡은 거라 그런 거라고 하고, 남편은 잡내 나지 않게 내장을 제거한 자기 공이라고 한다.
두 남자 덕분에 포식한다고 칭찬을 듬뿍해 줬다.

<나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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