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마지막 말

2019-09-16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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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마지막 말은 이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니 짧아도 함축하는 뜻이 깊다. 나는 유명 인사들의 마지막 말들을 찾아보았는데 역시 그들의 마지막 말은 그 사람의 생애를 정리하는 뜻 깊은 내용들이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은 숨을 거둘 때 어떤 말을 남길지를 생각하여 보았다.

우선 명사들의 최후의 말을 살펴본다. 한국 역사에서 매국노로 이름이 높은 이완용은 죽는 순간 곁에 있는 아들에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하는 세상이 올 것 같구나. 너는 친미파가 되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대대로 자기처럼 외세에 의존하라는 말이니 최후의 말로서는 어쩐지 개운치 않다.

조선 최고의 기생으로 이름이 높은 황진이는 숨을 거두며 “내가 죽으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길가에 묻어라.”하고 말하였다고 한다. 평생 기생으로서 남들에게 자기를 보이는 삶을 살았는데 죽은 뒤에도 보이기를 원하였으니 참으로 비참한 여성이다.


조선 역사에 찬란하였던 영웅 태조 왕건(王建)은 “인생은 덧없다.”는 말을 최후의 순간 입에 담았다고 한다. 찬란한 무훈(武勳)을 남긴 장군이었으나 인생의 허무를 씹으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말은 어떠하였는가? “지금 전투가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하는 명령과 더불어 운명하였다. 전사(戰士) 다운 용맹스런 말이었다. 최근의 역사로서 가톨릭 교회의 김수환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하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성자다운 최후였다.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은 곁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 놈들 내가 죽었나 안 죽었나 보러 왔겠지?”하고 끝까지 익살맞은 말을 하였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은 마지막 순간 “아, 나의 프랑스, 나의 군대, 나의 조세핀”하고 읊조리며 눈을 감았다. 애국자의 최후다운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세계의 미녀 클레오파트라는 독사에게 물리는 끔찍한 사형을 받았는데 여유 있게 미소를 짓고 “오냐 독사야, 네가 거기 있었구나.”하는 말을 남겼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자 이제부터 출발이다.”하고 마치 어디로 여행을 떠나듯이 여유만만 하였다. 유럽 전체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신하가 “대왕님, 누구를 후계자로 지명하시렵니까?”라는 질문에 “물론 가장 강한 자가 내 후임이다.”하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화가인 피카소는 “나를 위하여 축배를.”하고 말하고 숨을 거두었다.

필자는 영웅도 명사도 아니지만 죽을 때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는데 “이것으로 되지 않았겠나!”하는 말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뜻은 내가 무엇을 성취하였다는 만족감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내 능력에 어울리는 최선을 다하였다는 고백이다.
나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폐결핵 2기까지 갔다가 15년 만에 살아났고, 고향 해주에서 빨치산(공산군)에 체포되어 끌려가다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도주하였으며, 피난지 전라도 구례에서 공비(共匪)들의 습격을 받았을 때도 내가 숨었던 웅덩이가 발각되지 않아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진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도 자기의 최후의 말을 한 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살아갈 방향이 잡힐 것이다. 사람은 오직 한 번 산다. 연습이 없다. 내 인생의 결산은 냉혹하다. 후회도 반성도 필요 없는 날이 곧 온다. 약간의 성공에 취할 것도 아니고 다소의 실패에 좌절될 것도 없다. 우리의 삶은 날마다가 결승전인 것이다. 오늘을 착실하게 살자. 하루 또 하루 착실한 삶만이 나의 재산이요 내가 남길 수 있는 유산이다. 하나 밖에 없는 생애를 거짓과 형식과 위선으로 끝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역사에 남는 것은 ‘속’이지 ‘겉’이 아니다. 겉치장보다 내실(內實)에 인생의 승패가 달렸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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