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을 걸으며

2019-09-06 (금)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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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구름이 비껴간 하늘엔 태양이 아직 늦잠이다. 젖은 바람이 등 떠밀어 오랜만에 집 주변을 걸어 본다, 몇 걸음만 내딛어도 땀이 차 오르던 그 길에서 어느새 심신의 쾌적함을 맛본다.

지루한 여름을 타박만 하고 안락의 본성을 찾아서 분주하던 사이에 회전하는 자연의 이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굴레를 벗어나지 않고 제 할 몫을 다 하고 있었나 보다. 세포 마디 마다 곧은 줄기 치켜세우고 늠름하게 서있는 상수리나무에서 알갱이가 투둑 발아래 떨어져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큰 것으로 몇 개 주어서 만지작거리며 걷다가 숲속으로 살짝 던져주었다

이리 저리 둘러 보아도 지루했던 여름의 모습은 자리를 털어 내고 조금 남아있는 미련만 서성거리고 있다. 층층이 담쟁이의 초록군무도 새 옷으로 갈아 입을 준비를 하고, 키가 작은 여름 꽃 노란 금낭화도 도리도리 꽃 대궁을 흔들며 씨방을 채우고 있다. 가까이서 들여다 보니 꽃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마다 곱게 가을이 여물고 있다. 무심하게 지나쳤을 때도 그 자리에 있었건만 마음 열고 들여다보니 새롭고 낯설다.


따사로운 햇살은 이제부터는 자연에게 양보해야 하는 계절이다. 그래야 좋은 결실로 사람에게 보답하고, 다음 해를 기약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것이다. 한결 잠잠해진 새소리도 계절의 변화를 알려 주는 걸까. 떠밀지 않아도 떠나야 하고, 붙잡아도 가야만 하는 계절 앞에서 인간들은 너무 많은 소란을 피웠던 것 같다. 계절은 떠났다가 다시 돌아 온다. 돌아올 때 마다 다른 모습으로 조금 더 성장할 뿐 근본을 잃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세계를 자연은 거짓없이 다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 발길에 채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수액을 펌프질 하며 살아남은 개망초 꽃이 마지막 힘을 다하여 웃고 서있다.

강아지와 산책하던 할머니가 강아지 등보다 더 굽은 자세를 하고, 한 손으로 강아지 배설물을 훔치고 힘겹게 일어난다. 목줄에 끌려 가는 할머니의 등뒤에서 잃어 버린 시간을 돌아 본다.

한때는 초벌 수확한 옥수수 수염처럼 윤기나고 부드러운 금발머리가 젊음이란 이름표를 대신해 주었을 텐데. 빛 바랜 청바지에 당당한 발걸음, 봄같이 풋풋하게, 또 불타 올랐던 여름은 어디로 갔나. 사람도 자연처럼 되돌아 올 수 있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탐욕으로 멸망할 일이나 교만으로 무너질 일도 없겠고, 떠나가는 모든 것도 아쉬워 눈물 짖지 않을 것이다, 욕망의 늪에서 헤엄칠 일이 없겠고, 새벽부터 허리를 조여 맬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자연의 섭리는 사람은 변해야만 진정한 삶이라고 태초부터 정해 놓았다. 그리고 이 가을에는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되지 말고, 열매를 맺으라고 뜨거운 햇살도 내려 주신다. 저 들녘의 벼 이삭처럼 고개 숙일 줄 알고, 낮아지고 겸손 하라고 가끔 태풍도 보내 주신다. 부족해도 실망하지 말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 따뜻한 가슴을 품고,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곳간을 채우라고 소슬바람이 채찍질한다. 키가 큰 해바라기가 목이 곧은 세상을 향해 튼실한 씨앗이 되어 겸손하게 내려다 본다. 굽은 길 따라 걷다 보니 벌써 겨울이 실전에 배치 되었다. 도로정비를 하느라 삶의 무게를 땅속에 내려치는 노동자의 어깨를 훔치며 서둘러 일터로 향한다. 정원의 꽃도 눈 마주친 다람쥐와 새들의 노래도 잠시 잠깐이면 족한 세월의 분주함이 가을 언덕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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