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 바이러스

2019-09-0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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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결혼 50주년, 금혼식(金婚式)에 다녀왔다. 보통 사람들은 결혼 10년, 20년, 30년이 지나면서 수시로 싸웠다, 헤어질까, 화해하고, 다시 살다가 또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한다. 또 세월이 지날수록 서로 무관심해져서 '우린 싸울 일도 없어' 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혼 25주년을 은혼식(은), 30주년을 진주혼식(진주), 40주년을 녹온혼식(루비), 50주년을 금혼식(금)으로 세월의 흐름 따라 고가의 보석을 상징으로 한다.

30년도 아니고 50년씩, 둘이 합하여 100년을 살다니, 그야말로 백년해로(百年偕老) 아닌가, 참으로 그 인내와 노력이 대단하다 싶어 그 세월을 치하하고 싶다. 한 지아비와 한 지어미로 그 오랜 세월 살아오기가 어디 쉬운가. 더욱이 미국의 이혼율은 결혼한 부부 반 정도인 45%이다보니 이혼이 대수롭지 않고 흠이 되지도 않는 미국이다.

이 날, 부부는 평생 일과 봉사활동에 커다란 업적을 이룬 전문인으로 만인의 존경을 받는 위치인데 놀랍게도 하객은 직장에서 만났을 외국인이 거의 없이 98% 토종 한인들이었다. 아들, 며느리, 손주, 일가친척과 30년 이상 인연을 이어온 친구 모두 합해 겨우 40여명이 초대된 소박하고 진지한 스몰 웨딩이었다.


이날 보여준 동영상 중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50년 전인 1969년 9월20일, 결혼식 사진이었다. 순수하고 선한 눈빛을 지닌 신랑신부는 'No Family, No Friend, No Money, No Wedding Dress' 로 풋풋한 젊음 하나만 갖고 가정을 이루었다. 그날 분홍색 한복치마에 색동 깃과 고름이 달린 흰 저고리 차림의 신부는 머리에 짧은 면사포를 썼다.

금혼식은 플라워걸과 링보이가 꽃을 뿌리며 등장하는 순간 하객들의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졌고 노년의 신랑신부가 손을 꼭 잡고 입장 했다. 신랑신부 혼인서약, 예물교환, 성혼발표, 아들과 친구들의 축사와 덕담, 웨딩케익 자르기 등이 이어졌다. 신랑신부의 변함없는 사랑의 세레나데는 노사연의 ‘만남’이었다. 이 날, 웨딩드레스 못 입어 본 언니를 위해 50주년 웨딩 행사 기획과 준비를 해온 두 여동생은 정겨운 자매애도 보여주었다.

미국에 이민 와 사는 우리들은 세월따라 이리저리 허둥거리며 살면서 낭만을 잊고 산 지 오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족인데도 남한테 체면 지키고 사느라 가족에게는 대충 소홀해하며 산다. 그러다가 한 가족이 뛰쳐나가면 그때서야 이민생활의 성공은 무엇보다 화목한 가정이 최고인데 하고 후회하곤 한다.

이민자인 그대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가족, 친구, 고향, 조국을 모두 그 자리에 두고 태평양을 건너온 당신, 태양을 따라 바람을 따라 가시밭길도 마다않고 걸어온 당신의 옆에는 동반자가 있을 것이다. 긴 길을 함께 오며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고 간 적도 있고 마른 길 두고 진창길도 걸어왔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그대, 부부 사이는 어떤가? 더 나은 삶, 자녀교육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그대, 자녀와의 소통은 잘 되는가.

우리의 삶은 늘 편치만은 않다. 급류가 있고 폭풍우가 있고 적막하고도 서늘한 고요가 있고, 그렇다고 그 길이 굽이굽이 서럽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백년해로를 하려면 우선, 건강이 받쳐주어야 하지만 굿 나잇 키스, 특별한 날의 러브레터, 꼭 잡은 손(길 갈 때 넘어지지 않게), 좋은 친구 되기, 화난 채 잠들지 않기, 서로 웃게 만드는 것을 잊지말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살다보면 때로 절박했고 때로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치어 리더’ 라는 별명처럼 상대방을 웃게 만들고 긍정적인 성격인 아내 김광희, 아내의 공부와 일을 후원하고 인정해 준 남편 이진옥, 부부는 끝까지 인내하고 노력했기에 행복한 금혼식을 맞은 것이라 생각한다. 친지나 지인의 금혼식에 한번 가보라, 행복 바이러스가 전염되어 한동안 행복할 것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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