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코스미안

2019-09-06 (금)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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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대해 ‘구제할 길 없는 야만인들’이라고 하는 다른 백인들과 달리 인종청소 대량 학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극소수 인디언 어린이들에 대한 자비심과 동정심에서 이들을 서구인화 하려고 애썼던 한 백인이 있었다.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재향군인 리처드 프라트는 펜실베니아주 카라일에 ‘인디언 아이들을 위한 프라트의 카라일 학교’를 설립, 미국 각지의 인디언 부락에서 아이들을 데려다가 입학시켰다. 이들의 머리를 자르고 서양식 교복을 입혀 세례를 받게 해주었는데 이 가운데 한 아이가 이러한 경험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난 이제 더 이상 인디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백인의 모조품 같다.”

몇 년 전 미국 병원에서 해산한 처조카 며느리를 다른 가족들과 같이 방문했다. 신생아실에 있는 갓난아기를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면서 아이 이름을 지었느냐고 아기 아빠에게 물었더니 그는 대뜸 ‘조지’라고 한다. 아기 이름은 물론 부모나 조부모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 사는 한인동포 자녀들과 한국 아이돌이 서양 이름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도 동양인들이 서양 이름을 가지면 어쩐지 타고 난 얼굴 생김새와 이름이 맞지 않아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어색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 같다. 하긴 해외동포 1.5세나 2세 그리고 서양의 세례명을 가진 한국인은 서양 이름 갖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화교출신으로 첫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게리 로크(64) 씨가 지난 2014년 3월1일 퇴임에 앞서 중국 관영 매체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다. 중국 신문은 ‘잘 가시오, 게리 로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그를 ‘썩은 바나나’로 지칭했다. 겉은 노랗고 속이 하얀 바나나는 생김새와 달리 자신을 서양인으로 생각하며 사는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이 사설은 ‘바나나는 오랫동안 놔두면 껍질은 썩고 하얀 속살도 까맣게 변한다’며 ‘화교 3세인 로크 대사가 미국 입장만 대변했다’고 비난했다.

이를 같은 동양인의 입장에서 풀이해보자면 인(仁)과 덕(德)을 으뜸으로 삼는 동양의 왕도(王 道) 대신 인의(仁義)를 경시하고 무력과 금력을 중시하는 서양의 패도(覇道) 패권주의의 앞잡이 광대라고 조롱한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답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지킬 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 원숭이처럼 남의 흉내나 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태몽을 꾸고 태교를 한다. 그리고 태어나서 이름을 짓는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해바라기처럼 평생 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코스미안이다.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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