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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칼럼] 중간쯤에 살게 된 것의 축복

2019-09-05 (목) 김 숭 목사 /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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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곳까지 와 산 게 벌써 12년을 넘어섰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어쩌다’를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만 다섯 번째 거주지가 된 셈인데 어쨌든 여기 새크라멘토는 내게 가장 오래 산 지역이 되고 말았다. 물론 여기 이사 올 때는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리로 이사 오기 전에는 베이 지역 서버브인 월넛크릭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때만 해도 월넛크릭은 서버브라고 불릴 만한 필요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러기엔 너무 비대해져버린 느낌이다.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건 너무 복잡해졌다는 것. 이렇게 복잡한 데서 어떻게 우리가 살았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지금 사는 곳은 글자 그대로 서버브다. 새크라멘토도 10년 전에 비해 많이 커졌지만 그래도 이 도시엔 여전히 서버브 느낌이 나는 지역들이 많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은 동쪽 레이크 타호 쪽으로 한층 다가선 곳이어서 더 그렇다. 맞다. 난 지금 서쪽 태평양과 동쪽 레이크 타호 중간쯤에 살고 있다.


베이 지역 살 때부터 레이크 타호를 유난히 좋아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나처럼 레이크 타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그럼에도 이 면에서 날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무려 시간 반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 이리로 이사 왔으니 레이크 타호는 이제 우리집 뒷마당이 되고 말았다.

그때 레이크 타호는 휴가철에나 가는 휴양지였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좋았다. 온 가족이 함께 며칠을 즐길 수 있는 휴양지로서다. 지금은 일일 하이킹코스가 되었다. 아침식사 후 느긋이 출발해도 좋은 코스 찾아 충분히 걸을 수 있다. 해가 긴 여름날이면 수영까지 해도 집에 오면 이른 저녁이다. 그땐 새크라멘토 도성이 보이는 동쪽 언덕에 이르면, “아이고 여기서도 온 만큼 더 가야겠네,” 했다. 또 거기서부터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다. 타호에서 베이 지역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차량으로 하이웨이가 미어진다. 그 순간 휴가의 기쁨은 짜증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플레서빌 4차선 하이웨이가 나타나면 집에 다 온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살기 좋은 도시 순위’ 기사를 봤다. 새크라멘토가 전체적으로는 ‘중상(中上)’ 등수에 있었으나 분야별 평점 중 하나인 ‘자연 친화성’에서는 전국 4위를 차지했다. 경험적으로 이 객관적 평가가 결코 틀리지 않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이쯤 되면 내가 마치 새크라멘토 홍보대사가 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곳을 이토록 자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자연친화적 환경이 내게 가져다준 은은한 희열 때문이다. 목회자로서의 영성이 여기 와 더 축적된 느낌을 갖는데, 그것 역시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 덕택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오늘 저녁에도 식후에 집 뒷길을 걸었다. 저 멀리 서쪽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석양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다. 그에 반사된 하늘빛은 대낮엔 보기 힘든 짙푸름의 절정이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전반적으로 이곳의 삶은 내 내면을 풍성케 해주는 여유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의 넉넉한 자연환경이 그것을 내게 공급해준다. 특히 하루 한 시간 정도 걷는 산책의 시간은 내 영성의 증진을 많이 책임져준다. 그때 기도와 묵상이 활발히 진행된다. 설교와 글쓰기의 아이디어가 대부분 이때 이뤄진다. 자연, 공기, 나무들, 아직은 튼튼한 내 두 다리, 그리고 내 브레인이 함께 이뤄내는 합작품이 생산되는 순간이다.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의 바다가 그립다. 독특하게 차가운 그곳 공기냄새가 내 콧속을 맴돌곤 한다. 그러나 맘먹으면 시간 반 바다로 달려갈 수 있는, 또 반대방향으로 시간 반 산으로 달려갈 수 있는 ‘중간 즈음’에 산다는 게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훨씬 더 상회한다. 앞으로 여기서 얼마를 더 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사는 한, 나의 영성은 더 부요해질 걸로 확신한다. 돌아보니, 중간쯤에 살게 된 것, 매우 괜찮은 선택이었다.

<김 숭 목사 /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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