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8시간 노동

2019-08-30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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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일은 노동절(labor Day)이다. 이 날 미국인들은 야외 이벤트나 여름을 보내는 마지막 바비큐를 하기도 하고 장거리 여행을 하거나 백투스쿨 샤핑을 하는 등 나름 잘 보내고 있다. 원래 노동절은 노동자들의 권익과 복지를 보호 향상시키고자 제정된 날인데 미국의 노동절은 노동 인권을 기념하는 사회적인 행사보다는 그냥 하루 잘 쉬는 날이 되고 있다.
그런데 보통 다른 나라들은 노동절이 ‘May Day', 5월1일인데 미국은 9월 첫 번째 월요일이다. 왜 그럴까? 또 하루 8시간 일을 하는 직장생활을 수십년간 해오면서 8시간 노동제를 누가 처음 정했을까 궁금할 때가 있었다.

산업혁명에 이어서 등장한 자본제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탄생시켰다. 당시 영국에서 평균 노동시간은 하루 10~16시간, 1817년 영국의 사회운동가 로버트 오웬이 ‘하루 8시간 노동’ 아이디어를 냈다. 오웬의 생각은 102년이 지난 1919년 10월29일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제1회 총회에서 1일 8시간, 주 48시간 노동제를 정하고 국제노동기준으로 확립되었다.

세계노동자의 날이 정해진 것은 1890년 5월1일, 1886년 5월1일 미국에서 벌어진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헤이마켓(Haymarket) 노동자 시위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그 해 미국 노동총동맹은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실시, 전국적으로 34만명이 시가행진을 하며 동참했다. 당시 미국도 하루 10시간 근무 환경이 대체적이었다. 이때 시카고의 헤이마켓 광장에서도 8만여 명 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4일에는 시카고 맥코믹 농기계 공장이 파업 농성 중 노동자 4명이 경찰의 발포로 사망했고 5월4일 이를 항의하는 집회가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리던 중, 경찰 쪽에서 폭탄이 터졌다. 경찰은 노동조합원 8명을 범인으로 체포, 그중 파슨스, 스파이즈, 피셔, 엔젤 4명에 대한 교수형이 1년 뒤인 1887년 집행됐다. 이것이 헤이마켓 사건이다. (1893년 일리노이 주지사 존 알트겔드가 헤이마켓 사건 희생자를 무죄입증 했다)

이처럼, 헤이마켓 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매년 5월1일을 노동절로 정했지만 정작 미국(호주, 캐나다)은 5월 노동절을 피했다. 그날이 되면 헤이마켓 사건의 상처가 도질 까 우려한 정치권의 입김이 있었고 또 기존 미 노동운동단체가 9월5일 기념행사를 열고 시가행진을 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9월 첫째주 월요일을 노동절로 정하자고 했다. 이에 당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1894년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 연방공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한인사회를 돌아보면 대부분 크던 작던 자영업을 하려 한다. 시간당 최저임금, 오버 타임, 식사 및 휴식시간을 철저히 지켰다고 하나 업주나 종업원이 착각이나 오해, 생각이 서로 다르면 종종 노동법 위반 소송이 일어난다. 요식업소, 네일살롱, 델리, 세탁소, 베이글 가게 등 한인업소를 대상으로 한 노동법 위반소송 재판에 져서 폐업하는 업소도 생기곤 한다.

“네가 죽어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 일해야 먹을 것을 얻어먹으리니 ”(창세기 3:19), 그렇다. 사람은 생존과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노동, 즉 일을 한다, 직업(Job), 일(Work)은 돈을 벌기도 하지만 자아실현이라는 이유도 있다.

미국의 노동자이거나 자영업자인 우리들은 아래에 소개한 노래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1886년 5월1일 노동자들이 시가행진 때 부른 노래다.

“우리도 이제 노동 일은 않을 테야. 일해봐야 보람도 없는 그런 일은 않을 테야/ 겨우 연명할 만큼 주면서, 생각할 틈조차 안주다니 진절머리가 난다네/ 우리도 햇빛을 보고 싶다네. 꽃냄새도 맡아보고 싶다네. 하느님이 내려주신 축복인데 우린들 아니 볼 수 없다네/ 우리는 여덟 시간만 일하려네. 조선소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점포에서./ 우리는 힘을 길러왔다네. 이제 우리 여덟 시간만 일하세. 여덟 시간은 휴식하고 남은 여덟 시간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보세.”

뉴욕의 가을이 오고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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