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처락? 처락이 뭐여?

2019-08-24 (토) 최정자/펜클럽 미동부지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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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꽂이에 ‘哲學의 즐거움’이란 책이 있다. 철학자 ‘민병산(閔丙山)’ 선생님의 산문집이다. 책의 머리말을 쓴 이는- 오늘 인사동에 첫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밤늦게 이 거리를 빠져 나가는 순간까지, 우리의 가슴에 스며드는 것은 선의의 철학자 ‘민병산’ 선생의 체취요 그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음성입니다. 민병산, 그분이 누구였기에 수많은 시인, 소설가, 화가, 심지어는 이 거리에서 문을 연 책방 주인과 음식점 주인이나 찻집 여인들, 협기의 나그네들, 직장 처녀들까지 온통 그분의 그늘 아래 모여서 제자이기를 간청했을까요? 선생은 잘생긴 남자도, 힘 있는 수완가도, 시대의 첨단을 걷는 지도적인 지성을 자처한 분도 아니었습니다….

신동문시인과 민병산선생은 같은 고향에서 10대 소년시절에 헤어져 해방과 6.25전쟁이 지난 30대 초반 다시 만났다. 민선생은 그 때 벌써 노인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나 처음엔 서로 알아보지 못했다. 다시 만난 그들을 못마땅해 하던 신동문시인의 어머니는 친구를 가려서 사귀라 했다. 폭삭 늙은 친구가 ‘주색’에 곯았다고 막무가내였다.
“어머니, 병산(본명:병익)이는 ‘주색’에 곯은 게 아니에요. ‘철학’에 곯은 거예요” “처락? 처락이 뭐여?” “철학이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다는 뜻이에요. 아무튼 주색보다 더 지독하게 사람을 곯게 하는 겁니다.”

1943년 11월 루즈벨트, 처칠, 장개석의 ‘카이로선언’은 일본과 전쟁이 끝나면 한국은 독립한다는 내용이 있다. 몰래 이 기쁜 소식을 전한 학생들, 1944년 9월 보성중학교 4학년 학생서클 ‘독서회’ 회원들, 민병산은 친구들과 체포되어 종로경찰서에 구금된다.


민병산의 구금은 당시 전국에서 손꼽히던 세력가인 선생의 집안에 충격이었지만, 더 놀라고 당황한 것은 ‘총독부’였다. 선생의 할아버지 ‘민영필’을 미처 몰랐던 담당경찰의 실수였다. “당장 풀어주라”는 총독부의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선생이 절대 혼자는 안 나가겠다고 버텼다.

친구들과 함께여야 나가겠다고 버틴 감옥에서 10개월간 미결수였던 선생은 해방을 2개월 남기고 풀려났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혼자만 나온 것을 안 선생은 아연실색했다. 2개월 후 해방으로 풀려난 친구들은 마치 독립투사였다. 그 모습에 선생은 다시 한 번 아연했다. 선생은 그 때 깨달았다. “부귀란 짐스러운 것이다. 명예라는 것도 사실 우스운 것이다.”

남루한 옷차림, 낡은 가방, 99세쯤으로 보이는 구부정한 노인이 관철동을 지나 인사동으로 접어든다. 선생님은 ‘귀천’으로 ‘수희재’로 ‘아원공방’으로 ‘누님 칼국수’집으로 ‘구름을 벗어난 달’까지 가는 동안 해가 질 때까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다. 선생님은 59세의 마지막 밤에 돌아가셨다. 나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한 달 후에야 선생님께서 보낸 편지를 받았다. 나의 거실에 걸려있는 족자, 가슴 저미는 민병산 선생님의 붓글씨다.

<최정자/펜클럽 미동부지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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