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루

2019-08-23 (금)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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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한 낮의 햇빛은 살갗을 태울 듯이 파고들며 괴롭혔다. 차를 세우고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걷는 짧은 시간에도 그늘을 찾아 몸을 숨긴다. 땀을 식혀줄 한줄기 바람을 기대하지만 후끈 달아오른 아스팔트의 열기에 숨이 ‘턱’ 막힐 뿐이다. 어쩌면 살을 베는 듯한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만큼이나 무조건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절의 순환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그 뜨겁던 여름을 데리고 8월이 간다. 느린 걸음으로 왔던 계절은 이제 단거리 선수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충분히 뜨거웠으니 미련이 없을 거라 여겨졌다.

그러나 막상 여름이 떠난다고 돌아서니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들이 휴가를 떠나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북적거려도 내 몫의 하루에는 여전히 쉼표 하나 찍을 여유를 만들지 못한 까닭이다. 모처럼 낯선 곳에서의 하루를 꿈꾸며 미명의 새벽에 집을 나섰다. 목적지를 정했지만 꼭 그곳까지 가지 않아도 좋을 것이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 ervation Area) 이라는 이정표를 따라가다 첫 번째 마을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차를 세우고 작은 배낭까지 챙겨 들고 내린 동양인 부부를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낯설게 바라보았다. 노인에게 이 마을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을 물었고, 그 노인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얼핏 보기에도 오래되고 누추한 식당이 있었다. 검색해보니 랍스터 샌드위치로 유명한 곳이라는데 식당 안 어디에도 랍스터는 보이지 않아 잠시 망설였다. 주인 인듯 한 노인이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고 할머니가 손님으로부터 주문을 받았다. 주방을 향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면 할아버지가 주방 안쪽의 냉장고를 열었다. 무언의 눈빛만으로 서로를 읽어내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며 연륜의 의미를 배운다. 언젠가 다시 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식당을 나섰다. 샌드위치가 특별했다기 보다는 노부부를 다시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동네의 중심에는 성당이 있었다. 미사 시간을 확인하고 기다리는 동안 배낭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오랜 시간 서재 한 구석에 장식처럼 놓여 있다가 짧은 여행의 동무로 선택 되어진 시집이었다. 책을 사고 싶게 했던 한 귀절을 읽으니 그 책을 샀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인은 나보다 짧은 세월을 살고도 세상을 보는 눈이 더 깊었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시각이 맑았다.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은 첫 영성체를 받던 기억만큼이나 설레인다. 소박한 성당에서 모르는 이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축복을 빌어주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타성에 젖어 있었던가를 돌아보았다.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잡아주던 따뜻한 손길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미사가 끝난 성당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잠시 활기를 띄던 거리는 다시 곧 평온해 졌다. 이제 겨우 반나절이 지났을 뿐이었다.

나는 마을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오래된 우체국 앞에 섰다. 마을이 생긴 이후로 이 마을에서 자라고, 생을 마친 이들의 설레임과 기다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일 것이다.
비록 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앞에 서서 이제는 희미해진 내 서른 즈음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갑자기 멀리 떠나왔음을 깨닫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자동차 사이드 미러 속으로 붉은 해가 졌다. 긴 하루 였다.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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