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일종족주의 ‘

2019-08-21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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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명언이 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에드워드 불워 조지리튼이 1839년에 쓴 사극 리슐리의 추기경에 처음 대두되는 말이다. 이 말은 주로 언론의 자유와 비폭력주의 여론의 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때마다 자주 회자되곤 한다. 캠브리지 사전 웹사이트는 이 말의 뜻을 사상과 글쓰기가 폭력이나 무력을 사용하는 것 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킨 화제의 책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종족주의’가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요즘 일본에서 대 한국 경제전쟁 선포이후 한국에서 일어난 반일시위,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가장 뜨겁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예상외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지난번 한국에서 개최된 8.15 태극기 집회 이후 집회의 참가자들이 대거로 서점에 이 책을 사기 위해 몰려들어 순식간에 이 책이 동이 났다고 한다. 책의 구매자는 60대 이상이 23.4%, 50대가 18%, 40대가 14.9% 등 전체 구매자 73.5%가 40대 이상이라는 통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웃 일본은 밉던 곱던 같이 가야 하는 나라다. 그런데 한국인은 마치 반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다. 한민족은 한반도에 태어난 목적이 마치 반일을 하기 위함인가. 하는 등의 의문을 던진다.

대한민국은 지금 언론과 사상의 표현이 보장된 자유민주공화국이다. 기아와 독재로 점철된 북한 같은 이조 왕조 시대가 아니다. 열악하고 형편없던 조선의 종말을 가져오게 만든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기점으로 한민족은 오늘의 새로운 공화국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그 당시는 아마 일제가 아니었다고 해도 러시아나 프랑스 등 또 다른 열강으로부터 분명 조선은 주권을 빼앗겼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요즘의 민주화시위가 한창인 홍콩사태를 보아도 주권을 쟁취하고 유지한다는 것이 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확실히 목도하고 있다.

조선 말기에 과연 몇 명의 조선인들이 일제에 항거하면서 나라의 주권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고 했는가. 당시 조선은 어느 강국에라도 멸할 수밖에 없을 만큼 불투명하고 암울한 나라였다.

이제는 다행히 한민족 모두가 선진국들이 만들어 놓은 자유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다시 그 열악했던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하는 것이 이 교수의 핵심 질문이다. 언론과 학문의 자유가 허용된 민주사회에서, 자유가 억압된 조선 시대에서나 통할만한 반일선동을 한다는 것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하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인 것이다.

요즘같이 반일주의가 한창인 시점에 상당수의 지식층과 젊은층에서 그가 던진 의문에 합세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도 자유대한민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학자들이 마음껏 책을 펴내고 먹물들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담은 글을 쓰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북한 같은 전제국가 공산국가에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자유의사와 사상이 보장된 사회에서 학자들이 자신의 이름 석자를 당당히 내걸고 쓴 책에 대해 자신과 사상이 맞지 않는다고 이름을 감추고 비겁하게 숨어서 가명으로 저자를 인신공격하거나, 친일파다 매국노다 하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 악플들이 있는 것은 딱한 일이다. 할 말이 있으면 당당히 신분을 밝히고 기고를 통해 의견을 제기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담아 책을 편찬하던지 해서 반론을 펴면 되는 일이다.

오랜 세월 압박과 설움속에 살던 대한민국 국민이 이제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며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복이고 행운이다. 앞이 안보이던 조선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이제 새 시대 민주공화국에 걸맞는 합리적인 사고와 태도를 갖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국인이라고 무조건 반일정신이 마치 국민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인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는 흐름에 휩쓸리는 사고는 합리적이지 않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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