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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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냐 동맹이냐

2019-08-1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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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가장 가까운 인접 국가이면서도 앙숙관계다. 그렇다 보니 서로 끝없이 공격하고 맞대응한다. 이렇게 피터지게 싸워봐야 남는 것은 부스럼과 상처뿐이다. 이것이 바로 이웃의 속성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과 일본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연일 서로 끝장을 보겠다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얼마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소송에서 한국대법원이 일본정부가 보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리자, 일본은 즉각 한국과 최종 해결을 규정한 ‘한일청구권 협정’을 거론하며 보복조치로 한국에 수출되는 반도체 부품에 대한 규제를 단행하고 나섰다. 한국도 이를 철회하지 않으면 일본도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다는 화이트리스트 시행을 들고 나오고, 국민들은 반일을 외치면서 일제 상품 불매운동을 벌여 양국간의 관계는 점점 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두 이웃국가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 8.15광복절을 기해 일제 36년간의 압박에서 한국이 맞은 해방과 함께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한국의 해방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흘린 피와 노고가 있었지만, 당시 미국이 없었다면 한국의 광복은 쉽지 올 수 없었다. 세계 2차대전에서 일본의 항복으로 한국이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미국과 한국, 일본과의 관계는 사실상 혈맹으로 맺어진 특수 관계이다. 한일 양국은 이를 무리 없이 잘 유지하면서 우호관계로 지내 왔다. 결국 일본은 곱든 싫든 영원한 한국의 이웃으로 함께 가야 할 나라다. 그런데 지금 한국과 일본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경제전쟁에 죽어라 매달려 승산 없는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일제상품 불매운동, 화이트리스트 시행, 한일군사협정 파기 발표 등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히려 노골적인 혐한 발언을 하며 이미 충분한 보상을 했는데 한국이 틀렸다고 강변하고 있다. 한국도 질세라 내년 올림픽을 계기로 동일본 대지진에서 완전 벗어났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일본에 대해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출 사실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리겠다며 맞대응수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연일 강경대응으로 치닫는 양국간의 감정싸움은 서로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 준 미국을 생각해도 취할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 고마움을 저버리는 순간, 한국은 동북아의 외톨이 신세가 될 수 있고, 눈부시게 발전한 국가의 위치나 막강해진 국력도 자칫 도태될 우려가 있는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는 이제 끝이다, 우리는 오히려 북한과 힘을 합쳐 통일경제로 대항하겠다는 식의 발표를 하고 나섰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대응일까. 독일도 통일한지 30년이 지나도록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한국이 북한과 경제통일을 한다고 말처럼 쉽게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북한은 자국의 인민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있는 열악한 나라다. 그런 곳의 힘을 빌려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그들과 연대한다면 오히려 남한의 경제가 축이 나고 그동안 이룬 경제신화 마저 흔들릴 우려가 있다. 그런데도 북한과의 경제통일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결국 미국과 연대할 생각이 없고 일본과도 영원히 멀어지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일까. 아직은 실력도 미약한 상태에서 미국을 불편하게 하고 이웃과도 등지면서 무엇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을 기해 “이제는 그만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라가 될 것” 이라고 천명했다. 정말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가 되려면 이웃과 죽자 사자 싸울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타협하여 잘 지내면서 실력을 기르는 쪽으로 가야 옳다.

광복절이 되면 으레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이제 그만 입으로만 외칠 것이 아니다. 진정한 독립은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조용히 실력을 기르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국제사회에서 북한과의 외골수 경제통일론만으로는 진정한 독립이 되기 어렵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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