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찬가
2019-08-06 (화) 07:30:21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나뭇잎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유난히 뜨겁게 보인다.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뒷뜰 숲속의 나뭇잎들은 혈기왕성해서 깊고 넓은 녹색의 바다로 물결치고 있다. 사슴도 가족을 이끌고 피서를 갔는지 보기 힘들고 가끔씩 다람쥐가 용감하게 잔디를 가로지르며 새들의 노래에 춤을 추고 있다. 여름은 청년의 계절이다. 눈부신 여름나무들의 향연속에 과일은 태양을 마음껏 품으며 살이 찌고 영글어 간다.
토마토 여남은 개를 달고 있는 텃밭의 토마토 나무는 붉고 푸른 커단 생김새가 먹음직스럽고, 고추나무는 열심히 하얀 꽃을 피우며 앙증스런 꼬마들의 생명을 잉태한다. 오이나무도 노란 꽃이 피면서 나비와 벌과 속삭이고, 커다란 잎사귀를 우산삼아 어느새 줄기를 힘차게 뻗으며 사방으로 순을 감고 바쁘게 움직인다. 식물들은 열매가 맺히면서 존재의 의미를 남기고 있다.
여름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다. 여물어갈 가을을 꿈꾸며 넓은 들판에서는 한창 벼를 키우고 밤송이를 살찌우며 우리의 양식을 준비하고 있다. 가끔씩 바람을 일으키면서 천둥과 먹구름 속에서 소나기를 시원하게 쏟아내며 뜨거운 대지를 식히고 자연을 키운다. 조용한 밤에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교제하며 수십개씩 떨어져내릴 여름밤 별똥별의 아름다운 우주쇼도 계획하고 있다.
성하(盛夏)의 계절 8월은 심신이 지친 자들을 푸른 바다로 초대해서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영혼에 쉼을 주고, 출렁이는 파도타고 물놀이하는 육신을 구리빛으로 만든다. 그뿐이랴! 산을 향해 손짓해서 산등성을 오르내리게 하고 계곡의 물소리와 지저귀는 새들의 화음에 도취되어 스스로 아름다운 자연을 찬양하게 한다. 남편은 코흘리개 친구들과 논두렁에서 메뚜기와 개구리를 잡고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환호 하던 어릴적 여름방학의 추억을 가끔 이야기하곤 한다. 대학시절엔 친구들과 멀리 교외선 열차를 타고 참외나 수박밭에 뛰어들어 잘 익은 걸 따오기도 하고, 시원한 원두막 바람 쐬면서 재잘대고 먹던 그 과일들은 어찌 그리 달고 맛이 있던지….
미국은 독립기념일을 전후해서 불꽃놀이가 터지며 휴가철의 전성기임을 느끼게 한다. 가족들과의 휴가는 머리를 재충전하고 자녀를 건강하게 단련시키며 수국꽃처럼 예쁘고 세련되게 피어나고 바다처럼 넓고 풍성한 인격을 쌓는 터전을 마련해 준다. 여름은 목청높여 마음껏 젊음을 뿜어대는 매미와 멋진 자태로 날고있는 새들과 호랑나비의 계절, 몸도 마음도 팽팽했던 젊은 시절이 그리워지는 달이기도 하다. 농촌계몽을 한다고 그 뜨거운 태양아래 태양만큼 강열한 정열을 품으며 시골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봉사했던 기억이 새롭다.
자연의 언어는 묵묵하지만 명확하고 정직하다. 만물을 추석의 보름달만큼이나 풍성하게 키우려고 고통과 아픔을 감미하면서 활동했어도 생색을 내거나 주저함없이 8월에게 모든 공로를 넘겨주는 겸손함과 성숙함이 배인 7월은 욕심과 아집으로 얼룩진 인간의 추악함을 고스란히 반추(反芻)시킨 울창한 숲속 그늘을 천천히 밟으며, 긴 세월을 걸었어도 아직도 어렴풋한 삶의 길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스치는 바람결에게 조심스레 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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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