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을 조롱하고 있는 법치주의자

2025-07-22 (화) 07:59:04 강창구 클락스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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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많은 세상에서 진보주의자들의 변화속도를 경박스럽고도 무책임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게 보수(保守)의 전부는 아니다.
그 보수의 가치에 좀 더 천착(穿鑿)해 들어가면 자칫 잊고 무시했던 가치(價値)들도 많다. 그 사회와 민족, 국가의 존립과 영속을 위해서는 역사적 교훈과 사회적 미풍양속의 보전, 법질서에 의한 사회 기강의 확립등은 보수가 아니래도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소중한 가치이다. 누군들 변화만을 위해서 세상을 마구 부수고, 엎고, 혼돈과 무질서를 바라겠는가.

‘법은 우리가 지키기로 한 약속이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김상겸 동국대 교수). ‘법은 약속이고 약속은 법이다.’(천종호 판사) 약속에는 책임이 반드시 담보되어야 맞다. 그래서 책임(責任), 또는 책임감은 보수의 품격과도 같은 것이다.

권력은 유한하고 민심은 변한다. 한시대가 저물면 그 공과(功過)의 유산은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역사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에 대한 내란의 정리과정이 지난(至難)하다못해 아주 너덜너덜하고 넌덜머리가 난다. 처음에는 야당탓으로 계몽령 어쩌고 하더니 온통 부하들 탓이다. 자신은 호수위의 달그림자였다고 한다. 책임은 커녕 눈꼽만큼의 의리도 없다. 이를 듣고 보고있는 총리 이하 장관, 군대, 경찰들과 과거 지지자들도 기함(氣陷)을 하고 넋을 잃을 지경이다.


피의자 윤석열, 이력의 전부가 ‘검사 27년이다’. 형사부 출신 검사들은 상대는 반드시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았다. 그러므로 상대는 무조건 적(敵)이다. 자신들은 그 적과 싸우는 의인(義人)이다. 의인은 경우에 따라서 절차와 법을 위배, 무시해도 된다는 착각이 신념화 되어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윤석열이다. 검사라는 직업은 본질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캐는 직업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다. 나의 이런 행동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악영향을 초래할 것인지를 전혀 생각지 못한다.”(김웅 전의원, 2025. 7. 17 중앙일보)
그러니 미래에 대해서는 온갖 미신과 건진법사, 지관, 천공, 신천지, 통일교에 맡기다시피했고, 급기야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미국의 트럼프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다. 단 한번도 ‘죄송하다’는 말을 해본적이 없는 그에게 감옥은 성찰의 시간마저 사치이다.

내란수괴가 대낮에 활보하며 법을 조롱하고, 멸시 받은 법치주의에 의해서 정치는 후퇴하고 낭비되고 있다. 선서의 신성을 모욕했고, 산업화, 민주주의, 공정, 자유 등 언어를 사정없이 오염시켜버렸다. 지지자들에게는 비겁하고 국민들을 능멸하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이재명 정부는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2025. 7. 16) 세월호, 이태원, 오송,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 유가족을 초청한 자리에서 군더더기 없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고 했다. 여기에 전 정부나, 남 탓은 없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리 예방하고, 그래도 사고가 발생한다면 최소한 이전 정부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대부분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자리였다. 이것이 정부와 국가의 역할인 것이다.

“이날 영빈관에 있었던 그 침묵과 울음, 사죄와 약속은 사실 종교가 해야할 일이었다. 고통받은 자 옆에 서고, 무릎꿇고 눈물흘리고, 함께 진실을 외치는 것, 그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우리는 지금 신앙의 죽음을 애도해야 한다.” (지성용 신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수인번호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사회적 갈등과 피로는 가라앉고, 헌법과 법률이 정상 작동되겠지만 이재명 정부의 ‘진짜 대한민국의 앞날’에 윤석열은 기준점이 아니다.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정권이었다. 촛불을 들고 계엄을 막아선 국민들에게 상응하는 답을 하나하나 응답해야 할 치열한 시간들이다. 이는 우롱당한 국민들이 고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강창구 클락스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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