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탐소실의 역설

2019-08-03 (토)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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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린이들의 지능과 감성은 물론 성품도 어른들 뺨치도록 조숙해 가는 것같다. 우리 모두 어렸을 적엔 그렇지 않았는가. 구제불능일 정도로 타락한 어르신들을 닮아가기 전 까지는 말이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곱 살 짜리 내 외손자 일라이자가 태권도 클래스 견학을 갔다 오더니 레슨을 받지 않겠단다. 숫기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주먹과 발길질을 하면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할 까 봐서란다. 그러더니 좀 아쉬웠는지 할아버지가 보고 난 종이신문을 한 장씩 쫘악 펴서 양손으로 잡으라더니 처음엔 손가락으로 다음엔 주먹으로 그리고 발로 야아앗 소리를 신나게 질러가면서 신문지를 격파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방안 가득히 산산이 부서진 종이조각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긁어모아 비닐 쇼핑백에 잔뜩 넣어 묶은 종이공들을 농구나 축구볼로 열나게 한참 던지고 차고 노는 바람에 나도 숨이 차면서도 무아지경의 즐거운 금쪽같은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다.
내 주위에서도 밤낮 가리지 않고 365일 뛰던 40대, 50대 재미한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1970년대 영국에서 살 때를 떠올리게 된다. 런던 같은 큰 도시는 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작은 동네가게들은 일요일엔 문을 닫고 주중에도 수요일과 토요일엔 아침 9시나 10시부터 정오까지만 영업하며 평일에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물론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기 때문이겠지만 사람들이 돈 몇 푼 더 버는 것보다 삶의 질을 더 중요시해서인지 여가 시간을 즐기는 것같다. 동굴 답사니, 조류 탐사니, 독서클럽이니, 브리지게임 모임이니 수없이 많은 동호회를 조직하거나 아니면 가족 단위 또는 이웃간의 친목으로 샌드위치와 보온병에 담을 차를 준비해 공원이나 경치 좋은 곳으로 소풍을 간다.


내가 1980년대 미국 뉴저지주 오렌지 시에서 가발가게를 할 때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한두 주 문을 닫고 여행을 다녀오면서 매상이 많이 줄어들 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별로 상관이 없었다. 가발이 필요한 사람들은 가게 문 닫기 전이나 다시 연 다음에 사가더란 얘기다.

흔히들 먹기 위해서 사느냐 아니면 살기위해 먹느냐 또는 일하기 위해 사느냐 아니면 살기위해 일하느냐고 하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린 모두 정작 어린애들처럼 순간 순간 아무 거라도 갖고 재미있게 놀기 위해 산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은 언제 어디에나 작은 것으로부터 오며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큰 것만 탐내다가는 작은 것 전부를 다 잃게 되는 대탐소실(大貪小失) 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태상/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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