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에서 아픔과 시련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이 문제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생의 대 명제이며, 수수께끼같이 풀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요즈음 내가 좋아하는 필립 얀시가 쓴 이 주제에 관한 책들을 읽고 느낀바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가 신체적으로 느끼는 통증에 관해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몸에는 쾌감을 인지하는 촉감세포(센서)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손가락 끝으로 거친 표면이나 날카롭고 뾰족한 것을 만질때는 불쾌감 또는 아픔을 감지하지만, 같은 손가락으로 비단이나 어린 아이의 부드러운 살갗을 만질때 느끼는 좋은 감각은 그 감각을 따로 느끼게 하는 센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쾌감, 통증을 못 느낄 때 느껴지는 감각이란 사실이다. 여기에 덧붙여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은 만일 우리에게 아픔을 가져다 주는 시련과 고난이 없다면 과연 우리가 느끼는 쾌감과 만족감,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통증과 고난은 과연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혹자는 창조주의 실수라고까지 이야기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통증은 몸의 이상을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증은 몸의 이상을 알리는 경고성 신호등으로 볼 수 있다. 또 한가지 심각한 질문은 아픔을 수반하는 시련과 고난은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혹은 영적이든 왜 존재하며 존재의 원인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이 문제를 관조해 보면 인간이 당하는 고난은 죄에 대한 징벌, 보다 나은 영성을 위한 훈련, 악한 세력의 영향, 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것 들(자연 재해, 뜻하지 않은 사고 등)로 분류 되어지는 것 같다. 혹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완전 선’이 아니시기 때문에 인간에게 고통과 고난이 많다고 주장하며, 또 다른 이들은 ‘완전 선’이시라도 그것을 인생에게 온전히 베풀 능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반면에 어떤 이들은 시련과 고통은 창조주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확성기’이므로 꼭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세상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인간뿐 아니라 자연까지도 고통하며 신음하는 타락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약속된 온전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기까지는 우리의 고통은 숙명적이다.
나는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고통, 특히 그것이 자연 재해나, 불의의 사고, 불치의 병 등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것일 때, 그 원인을 묻기 보다는 그 시련과 고통 가운데에서 어떻게 긍정적, 창조적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까 라는 문제로 더욱 고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굿모닝 엔젤’이란 책을 쓴 삼중 장애를 가진 승욱이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그 시련이 몹시 못마땅하여 불평하고 심히 불행함을 느꼈지만, 차차 믿음이 자라남에 따라 다른 가정에도 장애아가 태어나는데, 왜 나에게는 장애아가 태어나면 안되는가로 생각이 바뀌었고, 그 후에는 자기를 승욱이를 키우기에 가장 적합한 어머니로 여기셔서 하나님이 승욱이를 그 가정에 태어나게 하셨다고 믿게 되면서 그 아이가 더 없이 사랑스럽고, 그 애 때문에 경험한 사랑과 행복감을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
27년전에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S 형제는 안경에 부착한 센서로 컴퓨터를 작동하여 책을 두 권이나 내고, 온라인 공부로 문학학사 학위를 받고, 현재 신학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 비록 손끝 하나 못 움직이는 상태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질과 능력을 보여주며 큰 도전을 주고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질문은 닥쳐온 아픔과 고난으로 인하여 한없이 원망하고 절망하며 남은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그 가운데에서도 긍정적, 생산적인 마음 가짐으로 본인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큰 격려와 도전과 영감을 불어 넣어 주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 선택은 자유의지를 소유한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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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효 약물학 박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