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Don’t Make America Small’

2019-07-31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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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에서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주먹과 맷집뿐이다. 자존심이나, 감정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자세로 링 위에서 죽어라 치고 맞고 할 때 진정한 스포츠맨십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관중들은 한판의 이런 멋진 복싱경기를 보고 싶어 한다.

선거전도 바로 복싱경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 후보토론회에서 출마자들이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는 정책이나 비전을 제시할 때 유권자들이 환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안 없이 계속 감정싸움에만 열을 올린다면 그런 정당이나 후보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로감만 심어주게 된다.

내년 2020년도 대선을 앞두고 공화, 민주 양당의 후보토론회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을 노리는 공화당과 이를 막아내고 차기 정권탈환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민주당 사이에 치열한 쟁탈전이 예고되고 있다. 대중들은 이제 누가 차기 미국대통령에 더 적합한가를 놓고 양 정당의 정책과 비전에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과연 연일 강공 드라이브로 치닫는 트럼프의 발목을 잡고 대선에서 고지를 탈환할 수 있을까. 지난 대선전에서 막말의 트럼프가 공화당의 후보가 됐을 때 어느 누구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당당히 제 45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지금 또 재집권의 꿈을 향해 줄기차게 달리고 있다. 그는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라는 슬로건으로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되더니 이제 또 다시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를 내걸고 지지층의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후보 당시 그는 숱한 구설수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확실하게 제시했으며, 당선 후에도 반이민정책을 철저하게 강조하며 미국 우선주의의 공약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고 있다.
민주당이 이런 그의 강한 수성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차기 정권을 탈환 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지리멸렬한 태도와 알맹이 없는 정책으로는 불가능할 일이다. 민주당의 실패는 분명한 정책 부재로 인신공격이나 불평, 불만밖에 내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전에도 이런 식으로 하다간 또 실패작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트럼프의 지지기반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란 링 위에서 어떤 정해진 규칙 안에서 당당하게 싸우는 것이다. 이를 원칙으로 한 선거제도를 가장 잘 정착시켜 놓은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틀 안에서 정권을 쟁취하려면 당당하게 민주당도 트럼프보다 더 훌륭하고 멋진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누가 더 잘났다 못났다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의 지금 모습은 마치 링 위에서 체급이 낮은 선수가 주먹이 안 되니까 이빨로 대항하는 꼴처럼 비쳐진다.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이기겠는가?

트럼프는 그동안 계속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딱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한달 사이에도 그는 민주당내 유색인종 여성의원 4인방에게 막말수준의 언사를 쏟아냈으며, 한 민주당의 흑인 중진의원을 ‘잔인한 불량배’라고 하질 않나, 흑인 목사를 향해 ‘사기꾼’이라고 비판하는 글을 트윗에 올려 흑인사회의 분노를 사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 내에서는 최근 100여명의 의원들이 트럼프의 탄핵절차 개시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트럼프는 끄떡도 않고, 그의 지지기반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에서 대중의 인기를 모아 대통령이 된 인물 중에는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를 꼽을 수 있다. 이들에게서는 분명한 정책이나 비전이 있었다. 케네디는 새 청사진으로 ‘뉴 프론티어’ 정신을 강조했으며,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라는 슬로건으로, 오바마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캐치 프래이즈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다못해 이번에는 민주당에서 ‘미국을 작지 않게(Don't Make America Small)'라는 슬로건이라도 나와야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인식이 없고서는 백전백패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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