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에 실업자가 되었다는 것이 썩 잘 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두가 다 출근하고 난 다음의 한적한 거리를 유유자적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닐 작정이었는데 가는 데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학생들로 넘쳐난다. 하다못해 맥도날드 브랙퍼스트도 혼자서 먹어봐야지 하고 갔는데 테이블 대부분이 친구들끼리 또 부모와 같이 온 아이들이 많았다. 직장을 다닐 때 어쩌다 평일에 월차를 내고 돌아다녀보면 참 사람답게 산다싶게 시간적 여유를 즐기는 부러운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그에 비해 직장과 집만을 오가며 도무지 여가생활을 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지기까지 했었기 때문에 막상 실업자이자 자유인이 되어 아무 때나 동네 도서관을 가보는데 항상 사람들이 많아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이다.
엄마 손에 잡혀 혹은 엄마 손을 이끌고 도서관에 드나드는 어린 아이들과 묵직해보이는 가방을 풀고 공부에 매달린 학생들이 도서관의 단골사용자들이다. 그 틈에 도서관 가까운 곳에 살면서 몇 걸음 걸어와 조간신문을 읽고 있는 백인 할아버지, 숱 많은 검은 머리를 틀어올려 시원해진 목덜미를 강조한 채 학생 두 사람을 상대로 과외공부를 시키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인 여성, 베이지색 왕골가방을 메고 새로 나온 신간도서의 책장을 넘기며 서있는 백인 할머니, 노트북을 펼치고 뭔가를 타이핑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 보이고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열람된 책장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내 모습이 있다. 한쪽켠에는 1달러에 세 권씩 저렴하게 책을 사고 파는 좌판 주변에서 구경하는 어린이와 부모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막 입학 전후이던 1960년 대 말 즈음이었을 것이다. 고창읍과 아산면에서 외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손에 자란 나는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진학을 위해 도청소재지인 전주로 이사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집을 마련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외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님 두 분이 나와 동생들을 키워주셨고 아버지의 사업체는 그때까지 고창읍내에서 유지하고 계셨으므로 부모님은 따로 또 같이 가끔씩 집에 들르시곤 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전주 집에 오신 엄마가 나와 동생에게 계몽사에서 펴낸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25권을 사주셨다. 빨간색 표지에 금박글씨로 제목이 박힌 책들을 우리에게 주시며 “이거 다 읽고 나면 나머지 25권을 더 사줄 거야.” 라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체 50권이 한 질이었다. 나는 책 속에 금새 빠져들었다.
소공녀, 소공자, 보물섬, 백경, 엉클톰스캐빈, 어린 왕자, 플란더즈의 개 등등 나의 동심은 책 속 상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표류하며 꿈을 꾸었다. 소공녀의 세라나 왕자와 거지의 톰과 에드워드의 뒤바뀐 인생 역정의 이야기들은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극적인 반전과 흥미로움을 자아낸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엉클톰스캐빈의 한 장면은 그 내용의 삽화까지 또렷하게 생각이 난다. 엘리저가 어린 아들 해리를 안고 강물 위에 둥둥 뜬 얼음을 밟고 건너가는 그림이었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목숨을 걸고 아들을 구출하는 모성은 세상 그 어느 것도 부질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게 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가능하다라는 가장 확실한 사실의 확인일 뿐이었다.
어린 여자아이는 책을 끌어안고 잠을 자고 밥 먹을 때도 책장을 넘기며 먹다가 할머니한테 혼나기도 했을 것 같다.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창에서 할아버지가 전주 집에 오셔서 계몽사 책을 보시더니 엄마한테 불호령을 하셨다.
왜 그러셨는지도 나도 모른다- 마당으로 책들을 죄다 집어던지셨다. 엄마는 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통을 다 받아냈던 것 같다. 그 기억의 영상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무슨 큰 대역죄라도 지은 죄인을 다루듯 엄중하고 매서운 할아버지의 무서운 화난 얼굴과 고개 숙이고 울던 엄마의 모습은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나의 가슴에 오히려 책과 문학을 더 사랑하고 추구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엄마가 사주신 계몽사 5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이야말로 내 정신세계에 씨앗을 뿌리고 자라게 한 온실이다. 그 후 나머지 25권을 더 사주신 것은 물론이다.
어린 시절에 그렇게도 좋아했던 책과의 동행이 요즘에는 좀 시들해진 것은 서글픈 일이다. 눈의 피로감은 읽을 책의 선정에 까다로움을 요구한다. 글자가 적당히 크고 시원한 책에 눈이 간다. 문고본 류의 책을 선뜻 집을 수 없는 이유도 된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도서관에 열람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고마운 책들 앞에서 즐거운 서성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어떤 책이든지 걸리기만 하라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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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경/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