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제나 나라는 백성들이 지켰다

2019-07-15 (월) 07:31:44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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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4일 일본의 아베수상이 일본 참의원 선거(7/21)를 앞둔 시점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의 개인보상에 한국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부당함을 내세우며 한국에 반도체 생산 소재 3개 품목에 대해서 규제를 발표하였다.

불과 1주일 전 일본에서 끝난 G20정상회담, 즉 자유무역을 확대 권장하는 G20개최국인지 의심되는 만행(?)으로 당사자 한국은 물론 세계가 발칵하고 있다. 그리고 또 1주일이 지나자 WTO를 의식한 듯, 규제품목이 북한의 핵무기 제조에 유출된 듯 한 발언(조선일보 기사 인용)으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으로 입장을 바꾼다. 내일이면 또 어떻게 바뀔지 궁색할 게 뻔하다.

세계 각국들은 현명한 지도자를 원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는 듯하다. 예전에도 그랬을 터이지만 지금은 더욱 요상한 자들이 권좌에 오른다. 달라져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미국대통령과 필자도 서로 직통하는 시대이니 그렇다. 그래서 각국들은 리더선출의 문제점인 선거제도를 보완해 보고자 하지만 그 속도는 한참 더 뒤쳐져 따라 오던가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각국 지도자들의 단순한 집권의지나 집착은 해당국가의 상황이나 시대정신을 무력화 시켜버리기 십상이고, 오로지 자신의 재선과 집권연장에 모든 정책을 집중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고 이는 때때로 국가를 넘어 세계를 혼란케 하고 있다.


미중간의 무역마찰에 이은 일본의 일방적 수출규제 조치건도 같은 선상이다. 국가대 국가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권력자의 개인의 권력의지가 문제의 출발이기 때문에 해결책도 권력자의 향배와 거의 연동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트럼프의 재선과 아베의 재집권 여부가 이번 사태의 향방을 가른다. 그 사이에 각국의 국민들은 무엇이 되며, 어떻게 그 동안을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은 관계국 국민들의 고통이자 숙명이다.

사태발생 10일이 지난 현재 한국정부는 우선 침착하다. 국민들도 독도나 역사왜곡문제를 대하는 때와는 달리 차분하게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고 있다. 안으로는 2016년말 촛불 1,700만의 응집된 열기가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 역사적으로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마다 백성들이 그렇게 온 몸으로 나라를 지켜왔듯이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우선 ‘일본 제품불매운동’에 돌입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설마는 했지만 아주 놀라운 일들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감지한다. 이미 짐작은 하시겠지만 자유한국당과 일부 언론의 태도와 대응은 놀랍도록 아베정부를 대변하고 있고, 그 지지자 그룹 또한 일반 국민의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확히 대북문제를 대하는 차이만큼의 인식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문제는 북한문제이고 일본은 일본이어야 한다. 이건 죽도 밥도 아니요. 철학은 없고 증오와 저주뿐이다. 이는 단순히 반 문재인정부를 넘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위해서 아베와 손잡고 ‘국가부도’마저도 열망한다는 항간의 소문이 그냥 소문처럼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오바마시절의 밀월을 그리며 트럼프의 재선을 방해하여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좌절시키고, 남북의 영구분단에 기생하려하는 아베의 책략에 동조해야 자신들에게 손톱만큼의 입지가 생길 수 있다는 듯 드러내 놓고 일본에 적극 동조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아베 수상을 구세주와 의인으로까지 표현하는 게 넘쳐난다. 표현 하나하나가 비굴하다. 해방직후 0.1%의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결과 그 100배가 번식해 있다는 느낌이다. 애시당초 해방후 출발부터 민족이나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탄생된 정파이니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겠으나 내걸고 있는 ‘보수’는 물론이고 ‘민족’ ‘애국’, ‘국적’마저도 불명해 보인다. 이 상황에서 이념과 정파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 동안까지는 남북문제를 포함해 국내문제라는 테두리 때문에 그 사고와 인식이 다름과 차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려 했다. 1633년 2월 늙은 갈릴레오는 로마의 종교재판에서 지동설로 유죄를 선고받는다. 지극히 진리였지만 배척당해야 했다. 소수의 반란이자 역사의 진보로 자주 회자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최근에 ‘지구는 네모나고 평편하다.‘는 설을 따르는 사람들의 인터넷 모임에 20만명이나 활동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이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이해와 설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한국의 제1야당의 황당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국가를 지키는데 보수가 앞장서라’는 다른 야당의원의 외침이 공허롭다.

사드보복에 전 국민을 통제할 수 있었던 중국과 아직도 군국시대의 레밍처럼 정부에 지고지순한 걸 자랑(?)삼아 독재를 하고 있는 일본, 양국은 아직도 한국의 시민민주주의의 참 모습을 간과하는 듯하다.
한국시민사회의 자부심은 1962년 쿠바위기를 맞고 있었던 당시 미 국민의 자부와 긍지를 능가하고 있음을 일본이 이해를 못하는 듯하다. 구태여 설명해줄 필요는 더욱 더 없어 보인다.

<강창구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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