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서 부모님을 가족들의 의견을 따라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크게 마음에 걸리는 일 중 하나는 고국에 있는 선친들의 묘소를 돌보지 못하고 있는 일이다. 연초에 기독교공원묘지에 모신 부모님 묘소를 현충원으로 이장하기로 가족들이 결정하고 추진해서, 6월12일 현충원에서 국가유공자 몇 분과 더불어 유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예식행사를 거쳐서 충혼당에 봉안했다. 세 발의 조총으로 시작된 의전대 의전행사가 얼마나 정중하고 멋졌는지 손녀들은 그때의 감격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님께서는 40년 전 젊은 나이에 별세했다. 자식들은 미처 ‘효도’를 못하였으나 이번에 조국에 ‘충성’한 국가유공자를 잊지 않고 보상하는 대한민국에 깊이 고마움을 느꼈다. 선친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복무 중 화랑무공훈장을 서훈 받았다. 이번에 손녀딸의 노력으로 국방부 기록 확인을 거쳐서 지난 3월 국가보훈처에서 4급 국가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이번 일이 성사된 것이다. 전쟁 후 70년이 지난 지금 선친의 군번도 알 수 없고, 청동으로 만든 화랑무공훈장도 자녀들의 기억 속에 있을 뿐 이미 분실되었으나, 외할아버지 얼굴을 본 적 없는 손녀 딸 나진이 관계 부처를 일곱 번 방문하여서 군복무기록과 서훈기록을 끝내 확인해 내었다. 잉크로 서류를 작성하던 아나로그 시절 부친 ‘정봉환’ 함자의 끝자 ‘환’자가 ‘한’으로 오기 되어서 동일인으로 일치 확인하는 작업이 간단하지 않아 관계 부처 담당공무원들이 많이 수고 했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며, 역사는 현재이다. 부친께서는 1927년 범띠 생으로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18살이 된 장남에게 징용통지서가 나왔고 가족들이 울음바다가 되자, 15세 된 동생인 부친이 그 징용 통지서를 들고 자청해서 형 대신 징용대를 따라 나섰다. 일본 북부 홋가이도 탄광으로 배속됐으나 경리담당을 해서 큰 고생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칫 사할린으로 갈뻔 했다는데 그랬다면 우리 형제는 러시아 교포로 태어났을 것이다.
강제징용 탄광노동을 소재로 2017년 흥행된 영화 ‘금문도’는 아무리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거의 코미디 수준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은, 45년 8월 일제가 항복하자 징용노동자들은 노동에 대한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반강제로 자비로 귀국선에 태워졌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그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8월24일 징용노동자와 가족 수천 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던 군용선 ‘우키지마 호’는 대한해협 바다 한 가운데서 폭발사고로 침몰했고 배를 탄 사람들 거의 전원이 사망하고 만다. 고의로 폭발한 것이 아닌가? 아직도 미해결된 이 사건은 그 날 한국에 곧 바로 뉴스로 타전되었고, 이발소에서 이발하고 있던 동생이 이 소식을 듣고 단숨에 달려가 모친에게 알린다. 다행이 아들은 그 배를 타지 않았고 살아서 고향에 돌아 왔으나 나의 할머니는 그 때 쇼크로 병을 얻어 오래 살지 못했다.
아버지는 48년 정부가 수립 되자 창설된 국방경비대에 자원입대한다. 나라 없는 설움을 이미 뼈에 새겼으니 ‘국가가 얼마나 소중한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수도사단 공병대로 참전했고 7년 복무 후에 상사로 전역했다. 공부할 나이를 강제 징용으로 보낸 부친의 제대 후 서울 생활은 녹녹하지 않았다.
새나라 건설 건축 하청업은 계절노동으로, 불안정한 수입은 사남매를 기르고 교육시키기에 늘 부족했고 가난한 살림에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하여 병을 얻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어서 아버지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따라 갔다. 나는 그 때 군복무 중이었으므로 불초의 한이 남는다. 때가 되면 고향 선산으로 이장할 계획이었으나 해외로 흩어진 자식보다 국가가 낫다고 생각하고 늦게나마 가족들이 현충원 봉안을 추진한 이유이다.
40년이 지난 오늘날 자녀 손이 17명으로 늘어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국가의 역사는 국민 개개인 역사와 다양한 상황으로 일치된다. 역사는 현재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역사를 알아야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다.
젊은 날을 조국의 고통과 더불어 치열하게 사셨고, 비록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일하였고 착하고 정직하게 산 부모님의 영예로운 현충원 봉안은 국가의 합당한 보상이며, 오늘을 사는 자녀손들 가슴에 빛나는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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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칼럼니스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