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사춘기에 자랑스럽게 가슴에 달고 다니던 고등학교 뱃지를 떼고, 온 세상 산지 사방으로 뿔뿔이 헤어졌던 남자들이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 모였다. 31 퍼센트는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남은 69 퍼센트 중 근 200 명이 배우자와 함께 모였다.
이번이 아마 마지막 이라고 생각들을 하며…
처음엔 김박사, 박교수 하던 호칭이 어느새 야, 너, 가 되고, 쟤는 수영 선수였고, 쟤는 모의고사에 항상 일등이었고, 또 쟤가 삼학년 때 내 짝이었다 라며 큰 소리로 신들이 났다.
그런데 K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왜 오지 않았는지 몰랐다. 가까이 사는 친구도 심각한 건강 문제인 듯 하다는 추측뿐이었고 세상과는 아주 차단을 해 버리고 산다며, 그 친구는 “힘든 문제를 내 보일 수 없는 게 무슨 우정이냐? 난 이제 그 녀석과 의절 할꺼야” 하고 화를 냈다.
한 친구가 “난 위암으로 위 잘라 내고, 항암 치료 받다 왔다.” 하자, 그 소리 들은 다른 친구는 “넌 그게 뭐 자랑이냐, 난 그거 삼년 전에 벌써 했다.” 고 토를 달았다.
J 는 부인과 같이 왔다. 유방암 진단을 얼마 전에 받고 방사선 치료가 끝난 다음날 비행기를 탔다며, “암이야 뭐 치료 다 했으니 걱정이 아닌데, 우리 어부인께서는 기억력이 점점 떨어져 가서…”. 이렇게 부인의 치매를 대수롭지 않게 얘기 했다.
5년 전 행사에서 만났을 때 그의 부인이 길을 잃어 경찰이 그녀를 찾아 올 때까지, 우리 모두가 버스 여섯 대에서 기다렸던 생각이 났다. 그동안 꽤 진전이 되었을 텐데, 그녀는 희끗희끗한 단발머릴 찰랑이며, 반갑다고 인사하고 즐거워하며, 닷새의 긴 행사를 마쳤다. J는 그의 아내 옆에서 평안한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으며, 늘 같이 놀았다. 우리 모두에게 무서움을 주는 병들도 그 사람의 한 부분일 뿐, 그 사람 전체를 변해 버리는 게 아님을 가르쳐 주는 친구이다.
J가 부인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에 비치는 햇살이 따뜻한 희망으로 아름다웠다.
지금 79세와 80세는 통계적으로 앞으로 11.3 년을 더 산다고 예측 한다니, 10년 후, 90세에 졸업 70 주년을 기념하러 다시 모입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콕파가 되지 말고, 싸돌이파(배낭 메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가 되라는 회장의 간곡한 당부와, 아쉬워 삼절 끝까지 부른 교가 제창으로 동창회는 끝막음을 했다. 10년 후를 기약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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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전 소아과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