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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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기쁨

2019-06-19 (수) 백영선/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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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남편과 둘이 늘 가고 싶던 산행에 나섰다. 잔뜩 기대에 들떴던 마음은 산에 가까이 갈수록 시들해졌다. 왠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계곡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유난히 많이 내린 비로 숲은 꽉 차 있었다. 전날 비 온 뒤라 목욕재계한 숲의 모습은 참으로 싱그러웠지만, 전처럼 감격스럽지 않았다.
내려오는 길에 어린 소년이 낚싯대를 들고 올라오고 있어 산에서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이 얼핏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계곡 물이 힘차게 내려가 물고기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엉뚱한 그 소년의 모습은 우리에게 함박웃음을 짓게 하였다. 산에서 걷는 것만이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깨는 상황에서 행복을 만끽했다. 순박한 소년에게 즐거움이 많이 낚이기를 바랬다.
조금 더 내려오다가 이제 한 살도 안 된 어린 여자아이를 만났다. 아빠 옆에서 우리를 보고 반갑다고 손을 흔들다 무게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려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보통은 아빠 등 뒤에 업혀서 가는데 이 아이는 땅을 딛고 서 있는 모습이 또한 우리에게 신선한 기쁨을 주었다.

어느 날, 시골집에 부추를 베러 가며 첫 부추라 기대를 잔뜩 했는데 웬걸 부추가 별로 없었다. 비가 많이 온 관계로 뿌리가 거의 썩어 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나마 살아있는 부추를 캐서 새로운 장소로 옮겨 주었다. 그리고는 지난 번 가지치기했던 밤나무를 보러 갔는데, 그 둘레에 부추들이 잡초들 사이에 무리를 지어 싱싱하게 자라고 있지 않은가.

언덕 위라 배수가 잘되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부추를 베니 갑자기 잃어버린 양을 찾은 것 같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들이 어릴 때 축구 시합 가면, 공을 넣기는커녕 늘 수비를 맡아 뒷전에서 서성거리다 오곤 해서 그런지 나는 별로 축구를 좋아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가장 나이 어린 한국 축구 선수가 동료 형들을 배려하며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애국가를 시합 전에 큰 소리로 부르자고 요청하는 모습을 보며, 가뭄에 소낙비 만난 것처럼 참으로 기쁘다.

개인주의에 빠진 젊은 세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 신선한 충격이 아닐수 없다. 이로인해 축구에 대해 내가 가졌던 편견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각박해진 세상에 이렇게 작지만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는 기쁜 일들이 범람해, 우리 세상이 소박한 행복에 젖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영선/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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