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센 강변을 끼고 이름 없는 화가들이 화폭을 마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명소가 있다면, 한강을 낀 미사리 강변은 언제부터인가 크고 작은 카페들이 생겨나 이름 모를 가수들의 명소로 변모해 있었다. 올림픽도로 옆 논밭을 메우고 들어찬 카페 앞에는 무명 가수들의 이름이 즐비하게 새겨진 막대기가 오가는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덩치가 커져가는 아이들에게 큰 방이 필요해서 일찌감치 강남에서 하남시로 이사를 계획한 것도 확 트인 한강과 산세가 수려한 검단산이 있었기에 비좁은 서울을 탈출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당시 하남시는 닭똥 냄새가 진동하는 채소밭과 남한산성 끝자락 야트막한 산새 밑으로 과수원과 허들어진 야생화가 발아래 널려있던 전형적인 시골 모습이었다.
비교적 직장시간이 여유로 왔던 남편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검단산을 등반할 때는 산이 친구처럼 부부의 대화를 엮어주는 소통의 장이 되어주었다. 서울 강남이 개발되고 분당 신도시가 탄생하고 서울 근교마다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넘쳐날 때에도 내 주위는 옛 모습 그대로인채 방치되어 있어 좋았다.
저녁을 마치고 체력단련 삼아 나가는 미사리 산책로에는 군데군데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은은한 물내음이 미풍을 타고 콧속을 간지럽히는 상쾌한 기분을 이곳 아니면 어디에서 맡을 수 있었을까?
그 후 수많은 카페가 터를 잡고 생겨날 때쯤 입 소문을 타고 서울 친구들이 곧잘 우리 집을 찾아 왔다. 생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시간 맞춰 교대로 통기타를 둘러맨 젊은 가수들을 친구들과 커피 한 잔으로 마음껏 바라 볼 수 있는 라이브 카페 무대. 살기 바빠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장을 찾아 볼 여유가 없던 시절, 집 가까이에 생활 속 스트레스를 마음껏 날려버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다니.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대형가수들과 풋내 나는 무명가수들이 번갈아 찾아와 열창하는 곳, 한때 불야성처럼 성황을 이루며 사랑과 낭만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이곳 카페촌은 서울사람에게도 충분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올 봄 한국 방문 때 미사리 강변을 돌아볼 기회가 생겨 팔당대교를 오가며 즐겨 찾았던 희미한 추억 속의 카페거리를 둘러보았다. 그 동안 많은 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다정했던 전원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터에는 코스트코와 테크노벨리, 타이슨스코너 쇼핑몰에 버금가는 스타필드 물류센터와 같은 초대형 건물들이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 몇몇 카페가 위태롭게 그나마 기사회생으로 살아남아 나그네의 심정을 달래주는 듯하다.
현란한 한강변의 불빛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펼쳐지는 야경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달래던 한때, 그 시절 한강변 미사리 카페들이 추억 속에서나마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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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우드스톡,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