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파 동기화로 숙면’ 속설, 다양한 백색소음기 인기
▶ 없으면 불안해 잠 못드는 수면개시장애가 생길 수도
새 지저귀는 소리 등 의미 없는 ‘백색 소음(white noise)’을 들으면서 잠을 청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불면증 환자가 56만명(2017년 기준)이 넘었다. 불면을 극복하려고 우유를 마시고, 족욕을 하고, 양(羊)도 세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편히 잠자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새 지저귀는 소리, 바람이 나뭇가지에 스치는 소리, 비 오는 소리, 파도 치는 소리 등과 같은 의미 없는 ‘백색 소음(white noise)’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의미 없는 백색 소음을 들으면 뇌파가 동기화(synchrony)돼 잠들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다. 시중에서는 백색 소음을 들려주는 다양한 백색소음기 제품이 넘쳐날 정도로 인기다.
백색 소음은 넓은 주파수 범위에서 거의 일정한 주파수 스펙트럼(70dB)을 갖고 있다. 소리 파동이 비교적 일정하기에 자극적이지 않고 우리 귀에 익숙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불면증 주원인의 하나가 스트레스인데 50~70dB의 적당한 소음에 노출되면 스트레스가 28%가량 줄었다는 미국 시카고대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백색 소음이 불면증의 묘약인지 아직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의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모든 백색 소음에 뇌파가 동기화돼 안정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이유다.
반복되는 자연의 소리에 짜증이 나는 성격이라면 오히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분비돼 각성이 더 될 수도 있다. 또한 백색 소음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져 잠들지 못하는 ‘수면개시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
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은 “백색 소음을 듣는 것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일종의 최면 요법인데 의학적으로 숙면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백색 소음을 잠자기 전에 항상 듣다가 이를 듣지 않으면 불안해져 각성 호르몬 코티솔이 분비되고 수면과 숙면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한 원장은 “고령인은 TV나 라디오를 켜 놓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수면개시장애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잠들기 전에 소음을 들으면 오히려 잠드는 과정에 방해가 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40㏈(거실 냉장고 소리) 이상의 소음이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60㏈(성인 대화)부터는 수면을 방해한다. 특히 뇌 각성은 이미 30~35㏈의 저소음에서 시작된다는 연구도 있다. 자려고 누웠을 때 TV 소리, 코 고는 소리, 윗집에서 쿵쿵거리는 소음 등은 모두 수면에 방해된다는 뜻이다.
주민경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백색 소음은 잠잘 때보다 낮 시간에 업무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건강한 수면을 위해서는 침실에서 소음을 아예 없애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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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