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임기를 전후로 영예롭게 퇴진한 경우가 없었다. 재임시 쫓겨나거나 피살당하지 않으면 감옥에 구금,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마감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선거로 하야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직원의 총에 맞아 서거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구속 1심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족의 뇌물수수 혐의가 원인이 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뇌물수수 횡령, 직권남용,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됐고 박근혜 대통령도 최순실 게이트 관련, 헌정사상 유례없는 탄핵을 당하고 구치소에 구금됐다. 그야말로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불명예의 전당이 되면서 이들에게서 퇴임후 아름다운 생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퇴임후 조용히 전원생활을 하거나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회고록을 집필하며 보내고, 대학 등을 찾아 특별강연을 하지 않으면, 봉사생활로 여생을 보람차게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버트 후버 대통령 경우는 후임대통령을 도왔으며, 대학강의, 사랑의 집짓기 등을 펼쳤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학강연 등을 하면서 퇴임이후 삶을 보람 있고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가장 아름답게 살고 있는 대통령이 바로 재임중 미국역사상 가장 인기 없던 지미 카터 대통령이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보다도 더 인기가 없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역전은 퇴임이후 2막에서부터다.
특히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간으로 전이되어 간의 일부를 제거한 후 검사결과 종양이 뇌로 전이되어 완치가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으로 시작된다. 그의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세인들은 모두 안타까워하면서 그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때, 그는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을 오히려 격려하는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재임초기 그는 서민적이라는 평가로 인기를 끌었지만 경제침체와 외교적 위기 등의 이유로 재선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퇴임후 고향 조지아주로 내려가 ‘카터 센터’를 설립, 비영리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제 분쟁 해결, 신생국가의 민주주의 발전, 인권보호 등에 힘쓰면서 빈민과 난민보호를 위한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활발하게 펼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전개된 1994년, 그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을 직접 만나 긴장완화의 결실을 맺었다. 다각도의 노력으로 그는 마침내 2002년도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임 대통령이라는 찬사까지 받게 되었다.
그가 이번에 또 94세에 재선 실패 후 고향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37년간 강의해온 에머리 대학의 종신교수로 임용돼 매월 한차례씩 강연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이 기회에 후학들에게 롤 모델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줄 것이다.
아름다운 삶은 비단 대통령을 지낸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일반인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우리 모두 배우고 실행하면 좋을 귀한 삶이 아닐까 싶다. 그가 이룬 결과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주며 노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확실하게 깨우쳐주고 있다. 퇴임후 남은 생을 그냥 허비하기 보다는 무엇이든 찾아 땀 흘리고 활기 있게 활동하면 인생 제2막이 더욱 감동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는가.
지미 카터의 생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그의 인생 1막이 별로 밝지 않았어도, 그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주어진 2막의 삶을 더욱 보람있게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에 있었다.
우리도 설사 과거가 어둡고 내일 죽음이 올지라도 오늘 이 순간만큼은 열심히 살면서 봉사하며 산다면 인생 2막의 삶이 의미 있게 장식되지 않겠는가.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평생 살 것처럼 학습하라.” 새겨 두어도 좋을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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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