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버지 날

2019-06-10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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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셋째 일요일(금년은 6월 16일)은 미국의 ‘아버지 날’(Father's Day)이다. ‘어머니 날’과는 별도로 아버지의 은덕을 감사하는 날을 제정한 것은 미국의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날’의 기원은 한 상이군인(傷痍軍人)으로부터 시작된다. 남북전쟁에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온 이 가장(家長)에게 비극이 시작된다. 아내가 6남매를 두고 죽은 것이다.

그는 자신도 고통이 심했지만 그 후 21년 동안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어린 6남매를 키웠다. 이 감동스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다드 여사(Sonoda Dad)가 ‘아버지 날’ 제정을 여론화 하였으며, 윌슨 대통령의 후원 서명을 받았고(1916년) 그 후 닉슨 대통령이 6월 셋째 일요일을 전국적인 ‘아버지 날’로 제정할 것을 공식 선포하게 되었다.(1972년)


‘아버지 날’을 상징하는 꽃은 민들레이다. 미국인들은 민들레가 잔디를 버린다고 해서 몹시 싫어한다. 민들레는 강인(强忍)하다. 밟히고 뽑혀도 계속 나온다. 사실 마음을 비우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들레는 작지만 아주 예쁜 꽃이다. 번식력이 매우 강해서 씨가 하늘을 날아 멀리까지 여행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번식을 못 막는다. 민들레는 향수 원료도 되고 약재로도 사용된다. 아버지를 민들레로 상징하는 것은 그 그윽한 향기와 인내력과 멀리 내다보는 믿음직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은 옛부터 동양인 가정의 기본적 윤리였다. 3천 년 전에 나온 모세의 법(십계명)에도 아버지께 대한 순종이 명기되어 있다. 효(孝)는 동양 윤리의 기본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아이를 위한 장래의 걱정이 있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아이를 위한 희생적 준비가 있다. 아버지의 가슴에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못 된 가책이 늘 있고, 아버지의 심장 속에는 좀 더 좋은 아빠가 되려는 결심이 있다. 아빠는 아침마다 어디론가 나가지만 그 머릿속에서 아이에 대한 염려와 사랑이 가시는 순간이 없다. 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겉으로 위로하는 자이며,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이다. 아버지는 최후까지 남을 아이의 고향이며 영원히 배반하지 않을 아이의 친구이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하여 하나님을 배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두려움과 자비, 위엄과 사랑, 징벌과 용서를 동시에 가진 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언제나 자기를 위하여 대기상태에 있는 것(Available any time)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자식을 결코 탓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표현하지 않고 자식을 위한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아버지의 얼굴은 엄하나 그 심정은 매우 부드러운 분이다.

필자의 평생 한(恨)은 아버지를 서울로 모셔오지 못한 것이다. 나의 고향은 38선 이북으로 북한에 속한다. 나는 해방 후 곧 서울에 올라가서 학교를 다녔다. 조국 분단 후 3년 동안은 거의 자유스럽게 남북을 왕래할 수 있었다. 내가 방학마다 38선을 건너 고향에 가서 놀다 오는 정도였다. 그러자 어느 해 갑자기 왕래가 불가능해지고 북에 있던 사람들은 영원히 북에,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은 영원히 남에 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산가족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아버지는 큰 기와집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집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하루 이틀 미루다가 결국 영구한 가족 이별을 하고 만 것이다. 이런 비극의 주인공들이 수 백 만 명이니 개인은 물론 민족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산가족의 역사도 어느새 70년, 지금이라도 가족이 자유스럽게 만나 볼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통일을 염원하는 수백만 명의 오랜 기도가 영영 안 이루어지고 마는 것일까?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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