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쟘보

2019-06-10 (월)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크게 작게
한 언어학자가 쓴 책에 보면 세계 여러나라 사람의 전화 받는 관습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전화가 오면 수화기를 들고 “쟘보” 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쟘보 라는 말은 스와힐리어의 인사말인데 그 말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무 상관 없다” (Nothing Matters) 라고 한다.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탄자니아와 케냐, 자이레 그리고 우간다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물론 전화가 오면 “헬로” 라고 대답하지만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화가 보급됐을때 사람들은 전화 대답을 헬로라고 하지 아니하고 “아호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호이는 선원들이 출항할 때와 바다에서 지르는 일종의 해상용어로서 등산꾼들의 “야호” 라는 소리와 같다.

소련사람은 전화를 “할로” 라고도 대답하지만 “슐루사유” 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슐루사유의 뜻은 “나는 듣고 있다” 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알로” 대신에 ”뿌론또” 라고 하여 “준비됐다” 라는 뜻을 말하며, 그리스 사람의 전화대답 “엠부로스”는 “들어오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사람은 “모시 모시” 라고 대답하고 중국에서는 “웨이” 라는 소리로 대답한다고 한다. 모시 모시에는 “실례실례” 라는 뜻이 들어있고 “웨이” 는 중국사람들이 가축 동물을 향하여 어서 와서 먹이를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한국어의 전화받는 말 “여보세요” 는 분명히 그 뜻이 “여기를 보라”요 그 표현과 동의의 어휘로는 여보, 여보쇼, 여봐라, 여기좀 봐요 라는 예를 들수가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가지 동의어 중에서도 “여보세요” 만이 올바른 전화 대답의 표현이 된 것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특수한 언어표현의 규례와 관습이 섰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관습들도 마찬가지이다.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이라는 철학자는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삶의 반영이라고 하였고, 또 삶의 의미에 규정을 짓는 요소는 바로 이상과 같은 언어 표현의 규례와 관습들이라고 하였다. 언어놀이 (Language Game) 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의 학설은 20세기 초기의 과학적 절대주의를 약화시키고 오늘의 문화적 상대주의를 시작하개한 모멘트였다.


그런데 “여보세요” 라든지 “쟘보” 와같은 말이 전화받는 말로 채택이 된 것은 오랜 기간동안 무의식중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여도, 여러 말 중에서 왜 하필이면 그 말이 채택이 되었을까에 대하여 우리는 흥미있는 추측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디서 걸려온 전회인지도 모르고 또 상대가 여기를 볼 수 없는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여기를 보라고 “여보 세요” 라고 대답하는 그 마음의 무의식적 근본 태도는 “이 바보같은 사람아, 딴전 팔지 말고 내 말을 똑똑히 들을라” 라고 할 수 있고 , “쟘보” 의 뜻은 “괜찮다” 이므로 그러한 말로 대답하는 사람의 바탕은 결국 “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많았는가? 무슨 말이든지 다 들어줄 터이니 안심하고 말하라” 라고 추측할 수 있을것 같다.

<윤석빈 / 은퇴 심리학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