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크리넥스 티슈

2019-06-05 (수) 이은정/ 뉴욕 시문학회 회원·시인
크게 작게

▶ 독자·문예

톡, 톡, 톡....
한 장 한 장 크리넥스 티슈를 뽑으면
기다렸다는듯 기꺼이 제 살을 내어준다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고
책상 위 얼룩을 닦는다
점점 비워져가는데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
톡!
그것이 삶의 마지막이었다
내 손에 안겨진 텅 빈 상자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잘 손질하여 속옷을 담으며
상자 안에 배인 엄마 냄새를 맡는다
갓 태어난 손녀 목욕물에
손을 넣어 간을 본다
오래전 귀에 익은 구성진 말투
따뜻한 온도로 내 손을 적신다
“아이구 우리 강아지 시원하겄네 많이 잡수시고 푹 쉬시게”
나도 모르게
세 아들 산후조리 해 주시던 엄마 흉내를 내 보았다
아들은 그저 싱긋 싱긋 웃었다
빈 상자 안에 물건을 담아
집안 곳곳에 두는 나의 애착은
그리움을 담아
바라보면 묻어나는
딸부자집 엄마의 야무진 흔적들
곁에 두고 싶어서일지도

<이은정/ 뉴욕 시문학회 회원·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