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망종, 단오, 하지

2019-06-04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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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6월. 봄은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 빈자리에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우리 주변 곳곳에 아까시꽃 향기가 한창이다. 장미꽃도 은은한 향기와 아름다움을 풍긴다. 딸기는 덩굴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다. 딸기 축제의 계절이다. 이 즈음에 반딧불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6월이 시작된 초여름 풍경이다.

한국의 농가에서는 이 맘때에 보리베기와 모내기가 한창일게다. 매화는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찔레꽃은 하얀꽃과 강한 생명력의 향기를 피운다. 사마귀가 모습을 드러내고 개구리들이 와글 거린다. 숲 속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먹음직스러운 산딸기도 곳곳에 숨어 있다. 농가 울타리에선 빨간 앵두가 익어간다. 별다른 고향 기억은 없지만 예전 6월 농가의 풍경이 그랬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음력으로 24절기를 농경 길잡이로 여겼다. 양력 6월에는 음력 5월절기로 망종과 하지가 있다. 단오도 이달이다.


오는 6일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 절기인 망종이다. 한자로는 까끄라기 망(芒). 씨 종(種)이다. 까끄라기는 벼나 보리의 낟알 껍질에 붙은 깔그러운 수염을 뜻한다. 망종은 벼나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실학의 선구자인 조선 후기 위백규는 격물설에서 망종에 대해 “곡식 중에 까끄라기가 있는 품종은 벼와 보리인데, 보리가 이 때에 익어서 종자가 될 수 있고, 벼는 이때 이르면 모종하여 심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시기는 보리 베기와 모내기에 알맞은 때이기도 하다. 옛부터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이라는 말이 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듯이 망종까지는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 익은 보리를 베어 거둬들이고 벼농사를 위해 논에 모를 심어야 하는 때로 1년 중에 농사일로 가장 바쁜 시기다. 오죽하면 ‘발등에 오줌싼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하지는 오는 22일이다. 24절기 가운데 망종과 소서 사이에 있는 절기이다. 이 때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어진다. 그래서 북반구의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 한국 농가에서는 모내기가 끝나는 시기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다. 정오의 태양 높이가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이 가장 많은 날이 하지인 셈이다.

망종 다음날인 7일은 단오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이란 의미로 통하므로 오월 초닷새를 뜻한다. 수릿날로도 불리는 단오는 지금은 잊혀져 가는 명절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설날, 한식, 한가위와 함께 4대 음력 명절이었다.

단오는 연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로 여겨 다양한 풍속과 마을 축제가 행해졌다. 그네뛰기는 여성들이 즐기던 대표적인 놀이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남성들의 대표적인 놀이로는 씨름대회가 있다. 절식으로는 취떡, 앵두화채를 먹었다. 무더운 여름을 대비해 단오부채도 준비했다. 농가의 부녀자들은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더 했고 창포뿌리로 만든 비녀를꽂아 재액을 막기도 했다. 옛부터 단오는 아무리 바쁜 농번기라도 마을 전체가 하루를 쉬어가며 민속 축제를 행했던 것이다.

망종 절기에는 즐기고 먹는 잔치가 아닌 벼 모를 내는 일하는 축제를 벌인다. 이 때 두레패들은 마을의 논을 돌아다니며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정성스럽게 모를 냈다. 모를 내며 풍악을 울린다. 논 주인은 막걸리와 새참을 내오니 매일이 잔치다.

모내기를 할 때 모를 꽂는 손 움직임과 농악은 엇박자가 나고 노래를 불러가며 일을 더 디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급하게 하면 몸이 망가지기 때문에 쉬엄쉬엄 놀고 즐기면서 하라’는 의미란다. 농사에서 일과 노동, 그리고 잔치가 하나였던 것이다. 농사에는 일하며 즐긴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셈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서로 함께하는 노동에는 즐거움과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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