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스프링그로브 묘지측이 페이스북에 6.25 전쟁 참전용사 헤즈카이아 퍼킨스씨의 장례식 소식을 올렸다.
“퍼킨스씨가 20년 전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비용도 미리 준비했지만 현재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가족들이 건강상 이유로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다. 내일 장례식에 참석가능한 지역사회 구성원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날, 이 깔끔한, 영원한 군인 퍼킨스씨 장례식에 고인과 일면식도 없는 지역주민 수천 명이 모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군악대 나팔 연주, 백파이프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연주, 수백 대 차량행렬, 퇴역군인들의 배웅 속에 그는 더없이 화려하고 영광스럽게 세상과의 이별식을 치렀다.
이 뉴스를 보면서 ‘아, 한국전쟁이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이 아니구나, 미국민들은, 우리들은 동방의 조그만 나라 한국을 위해 몸 바친 그대들을 잊지 않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현재 한국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화살머리 고지에서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 한창이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 남서쪽 3Km 지점에 있는 해발 281m의 고지다. 1952년 11월부터 휴전직전인 1953년 7월까지 4차례나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격렬한 고지전이 일어난 곳이다. 바로 이 고지전에 국군 제9사단과 미군, 프랑스군 대대가 참여했고 그 중 300여명이 전사했다.
6.25이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은 지난달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많은 유해와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4, 5월동안 유해 50여구가 발굴되었고 국군 유품은 물론 프랑스군 인식표 1점과 미군 방탄복 5점, 유엔 참전국 군인이 사용한 무기 등등 등이 발굴되었다. 최근, 이 ‘DMZ 화살머리 고지’에 6.25 전쟁 미 실종 장병 유족 수십 명이 방문했다. 이들은 할아버지나 삼촌을 본 적도, 기억도 없지만 빛바랜 사진으로 남은 가족이 숨을 거둔 곳에 왔다. 화살머리 고지에서 철책선 너머 고지를 바라보면서, 또 흰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두 손 모아 묵념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은 ‘9.19 남북군사합의서’의 주요 내용 중 하나지만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여파로 북한은 유해발굴에 대해서 묵묵부답이고 남측의 단독 유해발굴로 진행되고 있다. 국방부는 한국전쟁 기간에 북한에서 실종된 미군 숫자가 5,300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동족끼리 싸운 이 참혹한 전쟁 6.25가 나지않을 수는 없었을까? 조지프 스틸웰(1883~1946) 미 장군의 “대일전을 효과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미국이 중국 공산군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뤄졌다면 국민당 정부와 국부군의 무능부패가 덜해 대만으로 쫒겨가지 않았고 중공군이 한국전에 참여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1950년 1월12일 발표된 미국무장관 애치슨이 발표한 ‘애치슨 라인(한국과 타이완 등은 국제연합 책임이고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다)’이 없었더라면 미국이 한국전에 개입하지 않으리라는 스탈린, 마오저뚱의 엉뚱한 계산이 나오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6.25의 바탕에는 제2차 대전이후 제국주의 정책, 공산화 팽창주의 정책, 남북한 적대관계 등이 깔렸다. 헨리 키신저의 “미국, 중국, 소련의 3강국이 서로 상대에 대해 잘못된 전략적 판단과 계산이 뒤섞이면서 국제전 양상으로 전개됐다”(역저 ‘중국에 관하여는’) 말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문제는, 6.25가 한국인을 비롯 유엔참전국 군인 및 유가족들에게 끼친 상흔이 말할 수 없이 크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지구 반대편 저 멀리에서 일어난, 별 관심 없던 한국전이 남북, 북미관계 등과 연관되면서 미국 역사에서 관심과 비중이 커지고 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남북화합-통일로 가는 지름길을 얻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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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