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초대하지 않은 손님

2019-05-27 (월) 10:42:38 김수현 중앙시니어센터 문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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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듣고 쓰는 말이다. 초대라는 관념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옛날 (40~50년 전) 특별히 초대라는 말을 쓰지 않고 살던 때가 있었다. 아는 사람이 지나가다가도 우리 집에 들어와 식사 때가 되면 있는 반찬 없는 반찬 급하게 만들어서 상을 차려 대접해야 할 때 그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전기 밥솥도 없이 밥을 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짓는 밥이라 여유 있게 밥을 하지 못해 오신 손님한테 대접하고 나면 내 밥은 없어서 오신 손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시절 한국의 풍습이었으니 그렇다고 내색도 못하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집은 시부모님이 각각 9남매가 되다 보니 마음씨 좋은 시어머니로 인해 항상 일가친척들이 많이 들락날락 하였다.
철없는 어린 딸은 우리 네식구만 조용히 살면서 식사하고 나들이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불평하고는 했다.

외식을 해도 손님과 같이하니 우리 네식구 생활은 거의 없었다.
항상 긴장을 하고 언제 누가 올지 모르니 화장이며 옷차림도 신경 쓰고 있어야만 하였다. 나의 맏동서는 외국생활을 오래하면서 결혼하고 아들 낳아서 한국에 오셨다. 우리와 같이 서울에 살았으나 형님 댁에는 친척들이 가질 않았다.


형님은 서양 풍습으로 초대하지 않으면 자기집에 오는 것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 형님의 생활 방식을 아는 친척들은 우리 집에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주 왔었다. 시어머님조차도 형님댁 손자가 보고 싶어도 가시기를 조심스러워하셨다. 외국 풍습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 생활로 10년 넘게 지내다가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되었는데 먼저 미국에 온 맏동서는 미국 사람들의 풍습을 많이 가르쳐주었다.
형제자매 집이나 자녀 집에 가고 싶어도 상대방이 초대해 주어야 갈 수 있고 전화로 서로 날짜와 시간을 합의해야 된다고 강조하였다.

처음에는 다소 불편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방법이 합리적이고 서로의 예의를 지키고 사생활을 침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미국에 산지 오래 되어가니 초대 하지 않았는데 불쑥 누군가를 찾아 간다든지 약속도 없이 무조건 만나러 가는 것은 초대 받지 않은 불청객임에 틀림없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달픈 이민생활 지치고 힘들지만 누군가가 나를 초대해 주고 모임에 초대를 받았을 때 그 설레임과 기다림과 기대감으로 행복한 마음이 든다.

<김수현 중앙시니어센터 문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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