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통하고 소통하자

2019-05-24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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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인들이 어려운 민생과 경제상황 해결은 뒷전으로 하고 서로 막말 하며 싸우고 있다. 원색적이고 천박한 말이 여기에 차마 옮길 수도 없을 정도다. 증오의 말들이 정치 기사라면 외면하고 혐오스럽게 만드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한번 뱉은 말이 영상으로 영원히 남아 얼마든지 재생된다는 것을 잊은 것인지, 차후의 선거를 아랑곳 않고 한국민이나 재외국민 유권자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같다.

2년 전 촛불 정부가 등장한 이래 한국은 물론 미주지역에서도 한인들간에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끼리끼리 카톡을 하고 같은 편만 만난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수십년간 친하던 친구 사이가 멀어져 가고 심지어 동창회에서 정치 이야기는 금기 사항이 되고 말았다.


얼마 있으면 6월이고 6.25 69주기가 돌아온다. 오래된 책 정리를 하면서 낡고 변색된 소설책 이병주의 ‘산하(山河)와 이영식 저 ‘빨치산 ’을 버리려다가 다시 읽게 되었다. 실록대하소설 ‘산하 ’는 해방후 혼란했던 미군정 치하 무식한 한 노름꾼이 배신과 모략의 와중에서 제1공화국 국회의원까지 되는 이야기다. 미 군정치하의 혼란스러운 서울과, 지방에서 저마다 새 나라의 주인이 되고자하는 인간의 욕심이 잘 드러나 있다. 들뜬 민중과 과격한 흥분 속에 정당과 사회단체가 난립하고 이 와중에 여운형, 김구, 송진우가 암살된다.

서로 기득권을 가지려고 테러와 암살을 저지르는 투쟁이 얼마나 심한 지 8.15행사 2주년때 미 군정청은 이 행사에 옥외 집회나 행렬을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을 정도다. 이렇게 서로 싸움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전쟁 준비를 마친 북한에게 6.25를 당했다.
수기 ‘빨치산’은 월북하여 강동정치학원과 제3군관학교 출신 이영식이 6.25에 참전하여 백아산에서 투쟁하다가 귀순한 이야기다. 험준한 준령, 이름 없는 골짜기에서 춥고 배고프고 죽음에의 공포에 덜덜 떨면서 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싸워야 했을까.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을 했다.

조선시대는 또 어떤가. 우리는 일제하 일인학자들이 만든 식민사관으로 역사를 배웠다. 바로 ‘당파싸움으로 인해 조선이 망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자신의 학문 성격이나 이념적 성격에 따라 파가 갈렸고 이를 붕당정치라 했다. 16세기 선조이후 사림파, 훈구파, 동인, 서인으로 사색당파가 있었고 선조에서 정조까지 이어졌다. 당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현종, 숙종, 영조, 정조대다. 정조이후 60여년간 안동김씨와 풍양 조씨 등이 독재하던 순조, 헌종, 철종 시기에 조선이 망했다. 그러니 당파싸움으로 인한 조선멸망과는 시대적 거리가 있다.

여기서 조선의 르네상스기인 영조시대를 주목해야 한다. 조선 21대왕 영조(1694~1776)의 취임 일성은 탕평(蕩平)이었고 모든 당파가 고르게 참여하는 정책을 폈다. 심지어 이인좌의 난을 일으킨 소론과 남인 급진파를 난 진압후 등용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깊어진 적대감으로 탕평에 응하지 않는 신하들을 보다 못해 영조는 비오는 날 숙종의 진현 앞에서 절하면서 ‘왕노릇 못해먹겠다’고 선포하자 신하들이 몰려와 통곡하며 다시는 당파싸움 않겠다고 약속한 일도 있다고 한다.

조선의 당쟁은 여러 의미로 한국사회의 다양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요즘 여당과 야당의 갈등과 대립은 지지층을 향한 충성경쟁으로 또, 누가 큰 밥그릇을 차지 하냐는 싸움으로 보인다.

다만 기댈 것은 지난 2017년 5월10일 오전 국회의사당에서의 문재인대통령의 취임사이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

아무리 상대가 지겹더라도, 상대가 나를 미워하여 깊은 상처를 주더라도 국민화합을 위해서라면 소통하고 소통하자. 상대도 나의, 우리의 국민이지 않은가.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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