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달씨가 다시 돌아왔다. 50년 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그 손달씨가 다시 돌아왔다.
1970년 10월초 뜨겁게 내려찌던 여름 해의 기운도 기울어 푸르게 싱싱하던 나무와 그 잎새들이 붉게, 노랗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손달씨는 서울 명동 한복판 옛 국립극장 앞 광장에 나타났다.
지금은 여러 의미에서 광화문 광장이 더 의미있는 곳으로 명성이 높지만 그때 그 곳은 서울에서 제일 화려하고 번화한 거리였다. 손달씨는 그 거리를 달리며 “내게 돌을 던져라”고 외치며 달린다.
20대때부터 중년, 노년의 남녀모두이 걸음이 끊임없이 흐르던 화려하고 활기가 넘치던 명소였으며, 우리 연배 모두는 그 거리에서 사앙을 찾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한 잔의 커피 잔을 앞에 놓고 귀 언저리를 맴돌다 멀어져 가는 음악의 선율처럼 인생의 꿈의 날개 짓이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가는 인생의 슬픈 그림을 이야기 하던 그 거리 한 복판에 손달씨가 나타난 것이다.
화사하고 싱그러운 연인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물결치듯 흐르는 그 속에 손달씨가 나타나서 달리며 외친다.
손달씨는 1970년 보다 십수년 전 한국의 정치와 사회의 격변기 당시 권력의 서열 제3위 위치에서 용케도 도망쳐 외국에 망명해 살아남은 위인이다. 그는 달리며 외친다. 내게 “돌을 던져라”, “돌을 던져라” 하나 누구 하나 그의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없다. 집에서도 부인은 요즘의 ‘미투’ 연류설과 아들 딸 또한 앞날의 진로를 앞세우며 반겨주지 못하는 현실과 힘 빠지고 보잘 것 없이 돌아온 그를 옛 동지와 동료들은 외면과 냉대, 그리고 무관심으로 대할 뿐이다.
박수와 요란한 환호와 권력의 찬란한 불빛 아래 마음껏 생을 즐기던 그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안고 명동 거리를 달리며 외칠 수 밖에, 손달씨는 그렇게 끝나는 연극의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 속을 지나 극장 밖으로 나와 외치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을 뿐 아니라 미친 사람 취급을 하는 현실, 손달씨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1970년 10월초 연극 ‘손달씨의 하루‘는 그렇게 끝나고 손달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손달씨의 외침을 외면한 한국사회는 혹독한 댓가를 치른다.
72년의 유신헌법을 비롯해 권력의 사유화가 심화되고 헌정 사상 유례없는 비극을 초래하고 우리 역사에 어둡고 참담한 기억을 남긴다. 권력은 항상 귀를 열어놓고 수많은 다른 소리를 들을 용기가 있어 한다. 박근혜의 비극 또한 귀를 막은 아집의 산물이다.
손달씨가 사라진 지도 50년이 지났다. 그가 다시 나타나서 명동 거리나 광화문 광장을 달리며 “내게 돌을 던지라”고 외칠 때 아직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자고 나면 또 한 사람이 하루 지나면 또 한 사람이 벼랑 끝에 몰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손달씨의 하루’는 국립극장, 국립극단 58회 공연이었고 주연이었던 박암씨와 백성희씨는 오래 전에 고인이 되었고 아들 역 최불암씨는 아직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후기”
어느 날 아침에 검은 짚차 한 대가 직장에 나타나 필자를 싣고 종로 네거리 뒷골목 소위 안가(민가)에 데리고 가 심문과 협박을 하루종일 거듭 하고 밤늦게 귀가 조치한다.
필자는 그때 이대 영문과 졸업한 학생들의 요구로 당시 누구나 다 알던 젊은 유명 시인 연출로 단막 극본 ‘변사또’를 주었고 공연케 된다. 춘향전의 ‘춘향’은 우리나라 ‘미투’ 고발의 원조이지만 필자는 권력의 횡포에 희생되는 약자와 권력의 사유화와 남용은 새로운 권력에 의해 응징됨을 말하고자 제목과 주인공을 “변사또” 라 하였다.
또 하나 문제가 된 것은 당시 모 잡지에 실린 ‘산과 성’이란 희곡이 있다. 내용은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이고 아버지를 지방으로, 동생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는 이야기였다.
결국 필자는 일본 유학을 거쳐 이곳에 정착한 지 50년, 그 많은 미래를 묻어버리고 묵묵히 살아온 50년 행복했을까.
작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금년에는 서울에서 최초로 여성 해방을 외치며 집을 나갔다 돌아온 ‘노라’의 공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하나 그 보다 50년 전에 권력에게 쫒겨났다가 돌아와 외친 손달씨의 외침을 들었다.
그 손달씨가 50년 후에 다시 태어나 ‘촛불 시위’ 나 ‘태극기 물결’에 섞여 외치고 있다면, 무엇을 외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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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룡/ 뉴욕 스카스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