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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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견 메이야 미안해”

2019-05-21 (화)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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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고등학생 때 캐나다에 살던 사촌 언니를 만나 캐나다 고등학생들이 생물시간에 돼지를 해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물을 직접 해부하는 고등학교를 상상하니 선진국은 교육의 차원이 다르다고 그땐 부러워했다.

대학을 가니 간호학과 학생에게도 동물실험의 기회가 생겼다. 살아있는 토끼의 눈에 아트로핀을 떨어트려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토끼 눈은 충혈되고 귀의 혈관들은 터졌다. 간호대생의 실험이 끝난 뒤 그 토끼는 의대생의 해부용으로 옮겨졌다. 토끼 해부 후 의대 친구가 한마디 했다. “어떤 조는 해부했는데 임신한 토끼였데. 자궁에 새끼가... 그래서 교수가 난리치고, 동물 준비한 연구원한테 막 소리 지르고.”
나와 내 친구들은 우연히 해부대에 올랐던 임신한 토끼에 예민했던, 당시 임신 중이셨던 교수님을 솔직히 이해 못했다. 그땐 동물은 동물이고 인간은 인간이었다. 동물에게 감정이 있을 거라 정말 알지 못했다.

그렇게 10년 뒤, 미국에 와서 수퍼를 가다 우연히 찻길 옆에 차에 치여 죽은 듯한 거위를 봤다. 죽은 거위 옆에 지나가는 차에 아랑곳 않고 서 있는 거위는 1시간 후 집에 가는 길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그때부터 동물에 대한 내 시선이 바뀐 듯하다. 게다가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또 강아지를 키우다 보니 그 교수님 맘이 내 맘이 됐다. '나 잡아 봐라' 하는 다람쥐, 계절이 바뀔 때마다 냄새를 즐기는 개, 뒷마당에서 놀고 가는 너구리, 물에 빠진 핸드폰을 찾아주는 돌고래.


동물들도 사람처럼 감정을 느낀다. 무서움도 기쁨도 계절의 바뀜도 느끼는 동물을 보면서 고기를 먹고 가죽 가방을 사고 동물원에 가는 내 삶에 대해서 생각 했다. 당장 모든 걸 그만두고 자연인으로 살 순 없지만 동물과 인간이 건강하게 같이 사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울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물실험에 대한 프로그램을 봤다. 좋은 복제견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유기견의 자궁을 빌려 복제견을 만들고, 자궁을 빌려준 유기견은 불법으로 개장수에게 넘기고, 마약 탐지견으로 고생한 개를 다시 실험실에서 죽도록 실험하는 걸 고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의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생명을 가지고 실험하기 위해선 윤리의식과 정당성이 증명돼야 한다. 그래서 미국은 윤리 위원회이 실험에 대해 아주 까다롭게 사전심사를 한다.

서울대 수의대학에도 '윤리적인 동물 실험을 위한 가이드라인' 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곳 실험실의 '비글 메이'에게 과연 이 가이드라인이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마약 탐지견으로 일하다 서울대로 끌려간 메이는 “번식성을 확인하기 위해 과도하게 정약 채취를 해 성기가 기형적으로 튀어나왔고, 밥을 먹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살펴보는 생리학적 정상성을 시험하기 위해 최대한 굶겼을 가능성”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메이가 남긴 결과 논문의 가치가 궁금하다.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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