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칠천겁의 인연

2019-05-21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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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우리에게 그저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원인없는 결과는 만무하다. 불교의 인연(因緣) 설이다. 인(因)은 원인이고, 연(緣)은 그 인으로부터 생겨난 결과다. 인연생기(因緣生起)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모습 역시 원인에 의한 모습일 뿐이다.

자연계의 모든 현상도 원인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우연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인간의 생로병사도 그렇다. 행복과 불행, 만남과 이별도 마찬가지다. 성공과 실패 역시 다르지 않다. 모두 나름의 원인이 있고 인연에 의해 일어날 뿐이다.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인연을 만난다. 좋은 인연도 만나고 낮은 인연도 생긴다. 불경에 나오는 좋은 인연은 나의 진로를 열어주고 향상심과 각성을 주는 인연이다.


반대로 낮은 인연은 나의 전로를 막고 타락심을 조장하며 선연을 이간하는 인연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좋은 인연이 낮은 인연으로 변한다. 낮은 인연이 좋은 인연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인연을 맺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좋은 인연도 낮은 인연도 맺게된다. 어떤 인연이든 만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불가 용어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게 있다. 뜻은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말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피하려고 해도 만나게 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사람, 일, 물건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다는 법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시절인연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재물 등 내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인과 연이 합하여져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는 인연소기를 말함이다.

인연설에 의하면 우연같은 만남도 실은 우연히 만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생을 통해 맺어진 깊은 인연으로 만나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 연이 닿으면 만나게 된다는 이치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인연 맺기는 내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불교에서 아주 짧은 시간을 표현할 때 찰나(刹那), 탄지”(彈指), 순식간”(瞬息間) 등이라고 한다. 찰나는 눈 깜짝할 사이다. 탄지는 손가락 한 번 튕길 시간이다. 순식간은 숨 한 번 쉬는 시간을 뜻한다. 반면에 연월이나 시간의 단위로 계산할 수 없는 긴 시간은 겁(劫)이라 한다. 겁은 헤아릴 수 조차 없는 긴 시간이다. 1겁은 1,000년에 한방울 떨어지는 물방울로 바위에 구멍을 내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100년에 한번씩 내려온 선녀의 치맛자락에 바위가 닿아 사라지는 시간이라고도 한다. 참으로 상상하기도 불가능한 시간인 셈이다.

불가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는 이생에서 만나기 전에 이미 전생의 인연이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500겁의 인연으로 옷깃을 스칠 수 있다. 1,000겁의 인연이 쌓이면 한 나라에 태어나고, 2,000겁의 인연은 하룻 동안 길을 동행하고, 3,000겁의 인연으로 하룻밤을 한 집에서 자게 된다. 4,000겁은 한 민족으로 태어나고, 5,000겁은 한 동네에 태어나고, 6,000겁은 하룻밤을 같이 한다. 부부의 인연은 전생에서 7,000겁의 선근이 쌓여 만나는 인연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부부는 참으로 놀라운 인연이 만드는 셈이다.

부부의 연은 서로 존경과 신뢰로 맺어져 사랑으로 꽃을 피워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해서 함께하고, 사랑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부부다. 서로 이해하고 아끼면 가정에는 사랑이 피어난다. 이것이 가정의 행복이자 바로 사는 맛이다.

오늘은 ‘둘(2)이 하나(1)된다’는 의미로 탄생한 부부의 날이다. 한인부부 모두는 7,000겁의 인연으로 맺은 부부의 연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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