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한민국 현주소

2019-05-17 (금) 한재홍/ 목사
크게 작게
한 달간 대한민국을 누비며 다녔다. 선교모금을 위해서다. 직접 운전하고 다니며 여러 가지 상황도 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도 들었다. 국민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일인소득이 3만 달러시대가 되었다며 선진국 대열에 떳떳이 서게 되었다고 자랑이다. 자기도취에 취해있었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보다 듣기는 나도 좋았다. 그만큼 책임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런데 사고방식이 영 3만 달러 시대의 사람답지가 않고 지나친 자기 위주의 삶이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 잘난 맛에 취한 망상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씁쓸한 뒷맛이다. 그런 모습은 여러 분야와 두루 펼쳐진 생활에서 엿볼 수가 있었다. 쉽게 표현해서 기초가 잘못 서 있는 건물 같다고나 할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과 같다고나 할까?

그 대표적인 곳이 여의도이다. 정치가의 수준이 그러하니 국민의 수준인들 오죽하랴! 중용이라는 단어가 통하지 않은 정치판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중용이란 이것 저것의 중간이 아니라 가장 좋은 편의 자세가 아닌가? 그런데 옳고 그름의 헤아림이 없다. 모 아니면 도다. 이런 생각 속에서 무슨 생산성이나 성장이나 진취적인 것을 바랄 수가 있겠는가? 어느 친구의 이야기가 마음 속 깊이 파고들며 가슴을 아리게 한다. “다 도둑이다” 이란다.


믿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사회가 희망적이라 할 수가 없다. 차라리 한 끼를 굶더라도 사람의 냄새가 풍기고 정이 오가는 그런 공동체가 더 아름답지 않겠는가? 차라리 미세먼지가 끼어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안 보면 더 좋은 세상이 된 것이다. 친구 맹인목사님은 좋겠다 싶었는데 귀로 들으니 소리가 더 커진다고 불만이다. 보지는 못해도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남의 눈이 아니면 5~6월에 옷을 벗고 살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 이웃에 대한 배려 때문에 자신을 바르게 세우고 사는 과거가 있었고 동방예의지국이란 칭호까지 듣고 살았던 대한민국이 어찌하다 이리 되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번들 미래가 바르게 보이지 않은 이 시대에 대한민국이라 외치기가 두렵다.

대낮에 등불을 켜고 의로운 사람을 찾아다녔다는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생각난다. 머지않아 사람은 없고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가득한 한국을 생각해 보자. 두려워진다. 아니 무섭다.

그래도 절망은 말자. 내일은 태양이 다시 뜨듯 새로운 세상이 오지 않겠는가? 성경에서 사사시대에 자기 생각대로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는 희망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희망의 문이 열리는 시대가 올 것을 기다리며 오늘을 인내해 보자. 어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위대한 미래를 보고 싶다.

<한재홍/ 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