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달러도 좋아요

2019-05-10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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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팍은 뉴욕의 심장이자 허파라고 한다. 50만 그루가 넘는 나무와 바위, 풀밭, 호수 경관을 즐기며 뉴요커들은 조깅, 산책, 자전거를 탄다.

뉴욕 관광객들은 센트럴 팍에서 존 레논을 기리는 스트로베리 필즈를 방문하곤 한다. 2.5에이커 땅 한가운데 동그란 모자이크로 ‘IMAGINE’이 새겨진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이곳엔 늘 꽃 혹은 불 켜진 양초가 놓여있다.

1986년 10월9일 존 레논의 45번째 생일에 개방된 이 공간은 그의 부인 설치미술가 오노 요코가 100만 달러를 기부하여 조성된 곳이다. 존 레논이 생전에 살았고 현재도 부인이 살고 있는 다코타 아파트 창가에서 내다보면 이곳이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거나 100만 달러 정도는 기부해야 센트럴 팍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주 취재를 위해 찾아간 센트럴 팍 보트 하우스 벤치에서 한인의 이름을 보았다. 입구 가장 가까이의 벤치 등받이 부분에 ‘Greeting from your friends, Chin Ok Lee & kwanghee Kim June 8, 2014'라 새긴 명패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른바 센트럴 팍의 ‘Adopt Bench' 프로그램에 한인 부부가 기부하여 이름이 남겨진 것이다. 1986년 설립된 이 프로그램에 가입된 기부금은 9,000개가 넘는 벤치와 그 주변경관을 유지 관리하는데 사용된다. 벤치 하나에 1만 달러이며 현재까지 4,100개가 넘는 벤치가 채택되었다. 기부 신청서를 작성한 후 본인이 원하는 위치를 순번대로 요청할 수 있고 제작 및 설치에 약 8주가 걸린다.

그러고 자세히 살펴보니 벤치마다 살아생전 센트럴 팍을 자주 찾은 부모님을 기리며, 자녀의 이름으로, 친한 여성들이 우정을 기리며, 심지어 강아지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 이 프로그램에 한인으로 김광희 뉴욕가정상담소 설립자가 물꼬를 텄고 이후 관심을 갖고 가입한 한인들이 여럿이라고 한다.

또 그는 자신이 후원하는 마그놀리아 나무 한그루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 트리 트러스트(Tree Trust)는 센트럴 팍의 약 2만 그루 나무를 위한 것으로 기존의 나무와 새로운 나무 심기 기금으로 제공된다.

그 외 길더 런(Gilder Run)의 포장 돌 프로그램도 있다. 이름, 추모, 생일이나 기념일 등의 기억을 새겨 센트럴 팍 경관의 일부가 되는 길더 런은 동부 드라이브와 1.58마일의 저수지 달리기 트랙을 연결한다. 일반적으로 5,000달러, 6월말까지는 3,500달러 할인가로 제공되는 석재가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센트럴 팍 자연환경 보호 및 관리를 위해서다.

기부문화가 잘 발달된 뉴욕에는 각종 뮤지엄과 미술관이 즐비한데 무료로 입장하는 날이 있다. 사실, 무료입장이 아니라 누군가 기부금을 대신 낸 것이다. 모마는 매주 금요일 오후 유니클로가, 브루클린 미술관은 매달 첫 번째 토요일 오후 타겟이 스폰서다.

클래식 전당인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은 데이비트 게펜 기부금으로 앨리스 털리홀은 앨리스 털리 기부금으로 이름이 정해졌다. 줄리어드도 대학원이 설립되면서 기부자 이름인 줄리어드가 되었다. 미국 갑부들의 자선활동은 공연장, 연구소, 대학을 건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시민인 우리도 기부라는 말에 위축되거나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한인 비영리단체 기부는 10달러부터 50달러, 100달러도 가능하다. 가까운 주변에 눈 돌리면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말라리아로부터 보호하는 모기장 기부활동은 10달러부터 시작됐고 웨스트 버지니아의 더스키기 기술학교 흑인 졸업생들은 25센트부터 5달러, 10달러를 매년 모교에 기부한다. 어느 자산가는 어려서 10달러부터 기부를 시작하여 지금은 수천만 달러를 가난, 질병퇴치, 교육을 위해 기부한다.

관심, 나누려는 마음이 있으면 저소득층이든 돈 없는 사람이든 누구나 기부자가 할 수 있다. 작은 기부지만 그 보상심리는 클 것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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