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길 선생님께서는 온 가족에게 둘러싸여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박선생님께서 그동안 베풀어주신 큰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선생님은 여학교 선배이시고, 저희를 가르치신 은사이시다. 선생님께서 동경여자대학교를 졸업하시고, K여학교 교사가 되셔서 오신 첫날, 우리는 숨을 죽이고 선생님을 지켜보았다. 그 날의 선생님 몸매와 하신 말씀은, 선배에 대한 자랑과 존경으로 가득하게 교실 안을 채웠다. 저렇게 우아하고, 저렇게 새로울 수 있을 까? 자랑스러운 선배님!
박선생님과의 인연은 뉴욕생활로 이어졌다. 선생님께서 YWCA 회장으로 계실 때 많은 행사를 하셨다. 그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하셨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행사는 대성황을 이루었음을 기억한다.
한 때는 퀸즈 교회에서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셨다. 어떤 일을 하시든지 선생님께서는 정성을 다 하셨고, 거기에 새로움을 보태셨다.
박선생님 댁은 미드타운 센트럴 팍 서쪽 담 옆에 있었다. 맨하탄에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믿기 어렵다.
선생님 댁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어서 자주 드나들었다. 뉴욕 방문객에게 자랑거리로서 그 댁을 보여드리기도 하였다. 그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다과를 대접하시고 뉴욕생활의 즐거움을 선사하셨다.
그러다가 그 분의 자녀들과 일가친척의 모임에서 박선생님을 한국으로 모시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좀 더 잘 돌봐드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결정이다.
박선생님께서 한국에 계실 동안은 자부이신 창화님을 통하여 알아볼 수 있었다. 백세를 넘으셨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그 분만은 영생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였었다.
박선생님! 어디에 계시거나 관계없이 선생님께 대한 존경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일의 판단력이 뛰어나시고, 실행력이 강하시고, 주위사람들은 따뜻하게 보살피시던 넓으신 배려를 어떻게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오래 기억하면서 오래 존경하겠습니다.
박선생님과는 또하나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평안북도에 수풍댐을 건설하기 위해서 한 마을이 남한으로 이주시켰다. 그때 서울로 이주한 가족 중에 두 가족이 섞여 있었다. 박 선생님 가족과 우리 가족이. 얼마나 진한 인연인가?
오늘은 지금부터 센트럴 팍에 가서 박선생님이 옛적에 사시던 집 근처를 산책하려고 한다. 박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박선생님, 봄의 뉴욕이 생각나시지요? 한국처럼 개나리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성미 급한 뉴요커들은 소매없는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거리에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계절을 건너뛸 수는 없으니까 우선 센트럴 팍의 개나리를 먼저 보겠습니다. 거기서 박선생님도 만나뵙겠습니다.
봄이 되어서 제일 먼저 박선생님께 편지를 띄운다. 그리고 박선생님 뵙고 싶은 마음을 달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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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전 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