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강하게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2019-04-20 (토)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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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거. 그리 긴 게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짧은 것도 아니다. 인생을 길게 사는 사람들.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을 한 자들이다. 역사가 그들의 인생을 길게 만들어준다. 가령, 석가나 예수, 장자나 노자 같은. 인생을 짧게 사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수십억 아니 수천억의 사람이 태어나곤 죽었다.

그런데 역사에 길이 남아 기억되고 있는 사람들.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의 수명이야 다 거기서 거기다. 길게 살아야 100년이다. 석가는 80 여년을 살았고 예수는 33년을 살았다. 이처럼 인간의 물리적 수명은 짧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업적은 길게 간다. 석가로 인해 만들어진 불교. 예수로 인해 시작된 기독교. 길게 가고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흔히 듣는 말이다. 예술이 길다 함은 예술가의 업적이 남아 후대로 넘어가기에 그렇다. 빈센트 반 고흐. 37년을 살다 죽었다. 그러나 그가 그린 작품은 지금도 그의 인생이 살아있는 것처럼 팔리고 있다. 1890년 죽기 전, 약 10년간에 걸쳐 남겨진 그의 작품. 900여점의 그림. 1,100여점의 습작들.


유난히도 불행히 살았던 반 고흐. 창녀와 결혼까지 하려다 가족의 반대로 끝난다. 창녀에게 자신의 귀를 잘라 준다. 창녀의 신고로 경찰에 잡혀 정신병동에 들어간다. 정신병동에 들어간 다음 해 그는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이틀 뒤 사망한다. 그의 작품 중 ‘가세 박사의 초상’은 1990년 8,250만 달러에 팔렸다.

반 고흐와 정 반대로 극치의 호화를 살았던 화가가 있다. 파블로 피카소다. 91세까지 장수했다. 피카소와 살았던 7여자 중 2명은 자살, 2명은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수없이 많은 여성편력의 피카소. 70대에 20대의 여자와 살며 자식을 낳기도 했다. 그는 예술성 하나로 면죄부를 받은 화가였다. 그럼 피카소가 남긴 작품 수는. 1만3,500여점의 그림과 700여점의 조각품 등 3만 여점이 된다. 그의 작품 중 화관을 쓴 소년은 미화 가치로 약 1억2,000만 달러다. 1973년에 피카소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요 생명이다. 인간이야 어떻게 살았던 그들이 남긴 작품은 그들을 지금도 살아 있게 만든다.

공수래 공수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다. 인생이 길든 짧든, 역사에 남든 안 남든 모든 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인류가 지구 안에 발생 이래 공수래 공수거 하지 않은 인생은 한 사람도 없다. 빈손으로 갈 인생인데 왜 그리도 욕심을 내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욕심 부리지 말고 편하게 살 방법은 없나.

37년간 불행히도 살았던 반 고흐도 갔다. 91년간 부요하게 살았던 피카소도 갔다. 그들이 남긴 건 있지만 물리적 인생은 가는 거다. 어디로. 흙속으로 하늘 속으로.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보이지 않는 하늘로 돌아가는 것 아닐까. 하늘은 우리가 보는 하늘이 아닌 영원한 의식의 세계, 영원한 안식의 세계일 수 있다.

인생은 짧지만 미지의 세계는 영원할 수 있다. 불교의 윤회설을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음이다. 인간처럼 다른 동물과 식물에게도 있을 수 있는 세계. 보이지 아니하는 마음의 세계라 해야 할까. 모성의 세계라 해야 할까. 그 곳에선 생명은 영원할 수 있을 것 같다.

동갑 나이 지인의 딸이 얼마 전 또 세상을 떠났다. 나이 많이 먹어야 40정도 되었을 거다. 53세에 세상을 떠난 지인의 아들 장례식에 다녀 온지 불과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인생이 이런 건가. 자식을 먼저 보낸 또 다른 지인인, 부모의 심정. 어떨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이지만 부모보다야 나중에 떠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어디 떠나는 게 마음대로 되는가.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 역사엔 남지 않더라도. 또 예술을 남기지 못해도. 사는 동안만큼 욕심 없이 건강히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사는 날 수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수와 석가. 33년, 80여 년 동안 살았지만 그들이 남긴 생의 업적은 영원성에 가깝지 않은가.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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