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이 사는 사회

2019-04-19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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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살기 좋은 곳 일까? 간단한 질문이 아니다. “어느 곳이 살기 좋다”라고 말 할 때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을 열거하기 마련이다. 주거환경, 학군 등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역시 같이 사는 사람들의 질(質)이 아닐까 생각한다.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편안함을 느끼는 그런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지난 한 주를 지나면서 듣고 읽은 여러 한국 뉴스들이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직업이 학교 선생이라 그런지 아니면 아직도 지난 세월의 잔재(?)인 인륜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에 매어 있어서 그런지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은 한 주를 보내고 있다.

독서클럽의 한 분이 서울 지하철에서 일어난 소동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 주면서 그것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노인 부부 옆에 한 청년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있지 않게 되어 있다고 한다. 노인이 그 청년에게 불편하니 다리를 바로 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를 하자, 그 청년은 일어나 소리 소리를 지르면서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노인 부부에게 퍼붓는 것이 비디오에 잡혀 있었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을 뿐 만 아니라, 뒤쪽에서는 “파이팅, 파이팅”하며 젊은이를 응원하는 여학생들의 소리가 들렸다. 파이팅? 무엇을 위한 파이팅이지? 노약자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옛말이 된 지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노인이 앞에 서 있어도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전화기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서울 지하철의 풍경이라니 과연 그 곳이 사람이 살기 좋고 편한 사회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어느 분이 일본에서 경험한 것을 쓴 것이었다. 비행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예절 바르고 친절한 것에 받은 감동을 잔잔하게 쓰고 있었다. 비행기 문이 닫히고 활주로에서 이륙할 때까지 차렷 자세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이상해서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고 했다.


일본을 여행해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느낌은 사람들이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정직하다는 것이다. 지체장애 때문에 휠체어에 앉아서 일을 보는 친구 의사가 있다. 두어 달 전에 일본여행을 하고 온 소감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곳에 가던지 너무나 친절한 사람들 덕에 아주 편안한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에서 의과대학 교수를 하면서도 지체장애자였기 때문에 겪었던 온갖 수모와 불편을 견디지 못해 미국으로 이민한 그 분의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어떤 사회가 사람이 살 만한 사회인가? 교회에서 만난 어느 분이 왜 “방탄 소년단”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느냐고 묻길래 그런거 묻지 말라고 대답했다. 나의 관심은 그들의 음악이나 인기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지하철에 탔을 때 노인에게 좌석을 양보할 수 있는 인성이나 인품이 있는지, 정직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성품을 가진 젊은이 들인지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사회와 국가의 중요한 일들이 길거리의 데모대나 촛불을 든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에서 그것을 기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과학과 기술의 이름으로 인성이나 인륜에 관한 교육을 포기한 지 오래된 사회에서 별처럼 떠오르는 현상은 별처럼 저버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꽃꽂이의 꽃들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뿌리 없는 꽃이 쉽게 지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상식이 아닌가?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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