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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기: 달밤의 도주 (1)

2019-04-17 (수) 최효섭/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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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간증이라는 것을 많이 안 하지만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일 한 가지는 간증을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이다. 해방 후 우리 형제 4형제가 모두 월남하여 서울에 왔는데 아버지는 해주에 머물러 계셨다. 해주에서 몇째 간다고 말하던 큰 기와집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한때 국군과 미군이 평안도까지 진격하여 거의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디어 통일이 될 것으로 믿어 북한 출신들이 많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의 형들은 모두 공무에 바쁘고 군에도 입대하여 고향에 돌아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18세의 내가 아버지를 보기 위하여 해주로 들어갔다.


고향 집에 가서 겨우 보름도 안 되었는데 나의 매형이 얼굴이 파랗게 질려 집으로 달려들어왔다. 중공군이 참전하여 전세가 갑자기 밀리고 서둘러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민주인사 일곱 사람과 함께 피난길에 나섰다. 12월24일 밤, 아주 밝은 보름달이 밤길을 낮과 같이 밝히고 있었다.

우리 여덟 명은 한 줄로 서서 걷고 제일 어린 내가 끝에 섰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에 군인들이 나타나 공포를 쏘며 우리를 멈추어 서게 하였다. 그들의 군복으로 보아 국군이 아니라 인민군이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인민군에게 붙잡힌 것이다. 아마도 수양산에 숨었던 인민군이 국군이 밀리는 정보를 재빨리 듣고 내려와 이미 시가지를 점령한 것 같다.

우리는 두 팔을 높이 든 채 끌려가고 있는데, 잠간 뒤에 다른 피난민 무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공산군은 그들을 향하여 공포를 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주위가 소란해졌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재빨리 가까이에 보이는 골목으로 달려들어갔다.

내 뒤를 한 녀석이 추격하는지 눈에 총알 튕기는 것이 보인다. 눈앞에 낮은 철망이 보인다. 나는 달리는 속력으로 뛰어올라 철망을 딛고 그 집 안마당에 떨어졌다.
문을 열고 나가니 내가 아는 위치이다. 살살 숨어서 내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놀라서 나를 껴안고, 누님은 “매부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내가 알 길이 없어 도망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드렸다. 아버지가 나를 하수도에 세 시간 숨겼다가 나오게 하였으며 아침에 나를 여자로 변장시켜 조카를 업고 해변으로 보냈다.

해변에 아버지가 잘 아시는 박씨라는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미 그 집에는 남쪽으로 피난하려는 사람들 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해주 바다는 조수의 차이가 심하여 물이 십리쯤 빠져야 걸어서 남쪽으로 건너 갈 수가 있다.

초조하게 물때를 기다리다가 어부가 출발하라는 말을 하자마자 출발하였다. 바다에는 골이 있어 깊은 데도 얕은 데도 있다. 뒤에서는 총 소리가 들린다. 추격대가 나타난 것이다. 가슴까지 바닷물이 찼지만 돌아갈 순 없다. 결사적으로 물속을 걸었다. 아직은 남쪽이다. 경찰들이 자기들의 가족을 위하여 강제 나포한 작은 어선 한 척이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찰은 배의 정원이 있어 우리를 태울 수 없다고 승선을 거절하였다. 내 머리에 번개 같이 신분증 한 장이 생각났다.

나는 국군이 서울을 회복하였을 때 잠간이지만 역산가옥(逆産家屋-공산당원이 내버리고 도망친 집)조사관 일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조사관의 신분증은 계엄사령관(戒嚴司令官)이 발부한 것이다. 경찰관은 어린 나에게 경례를 붙이더니 갑자기 존대말을 썼다.

“몰라 뵈었습니다. 계엄사령부에 계십니까?” 나는 시치미를 떼고 점잖게 대답하였다. “그렇소. 나는 여기에 머물 수 없는 신분이니 배에 타야 하오.” 경찰관이 고개까지 숙였다. “얼른 타십시오. 곧 떠나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 한 사람 피난선에 오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피난선에서 장차 나의 인생의 발향을 전환할 중요한 일이 벌어진다. 경찰관 한 명이 주머니에서 작은 책을 꺼내 잎담배를 말아 피우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책은 작은 성경책이다. 나는 늘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던 영한사전이 있음을 생각하여 말하였다. “아저씨 내 책이 당신의 책보다 훨씬 종이 질이 좋을 거요. 이것과 바꿉시다.” 경찰은 두 책을 비교하더니 얼른 바꾸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배에 있는 한달동안 날마다 성경을 읽고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 우연히 읽게 된 성경인데 뒤에 내가 신학교로 전학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계속>

<최효섭/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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