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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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닥터 프리즈너’

2019-04-16 (화)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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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새로운 의학 드라마가 시작했다.

많은 드라마가 항상 그래왔듯 뜻밖의 상황들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의사 앞에 잘 알고 지내는 장애인 부부가 교통사고로 나타난다. 게다가 여자는 임신 중이다. 죽어가는 부부를 치료하는 주인공 앞에 머리에 난 아주 가벼운 상처를 치료하라고, 교통사고 가해자인 재벌 ‘갑’이 난동을 부린다. 결국 장애인 부부는 죽고 치료를 제때 못 받았다며 ‘갑’이 보복으로 의사를 감옥에 보낸다. 다행히 의사 면허증은 되찾아서 주인공 의사가 자신의 방법으로 세상의 ‘갑’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다.

돈이나 배경보다도 상처의 심각성으로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것이 병원이다. 하지만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 기본상식이 무시된다. 그럼 한국만 그럴까? 미국도 그렇다.


주말에 한 환자가 내시경 검사를 위해 입원했다. 입원절차를 마치고 주치의가 오고 내시경 담당 부서에 연락을 해야 하는데 모든 것이 그 환자의 보호자라는 '의사'에 의해서 무시됐다. 자기도 의사라며 급한 '내' 가족의 내시경을 당장 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는 내시경 부서 과장과 다 이야기가 끝났다며 내시경실로 의사의 가족 환자를 옮기라고 소리를 질렀다.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 그 환자는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의식이 또렷했다. 즉 아주 응급상황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기본 혈액검사가 나오고, 입원을 위한 컴퓨터 기록을 다 마쳐야 하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의사'라고 고함치는 그 가족에게 다른 환자들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병동이 시끄러우니 누군가가 내시경실에 전화했다. 다행히 한국 의사분이 그날 당직이셨다. 한국인이라는 찬스를 이용해서 무례한 환자를 재빨리 내시경실로 옮겼다. 환자의 가족이라는 '의사'는 자기가 병원에 높은 사람들과 절친이라고 내시경실로 환자와 같이 가면서 마지막까지 고함을 쳤다. 그 고함을 온몸으로 맞던 나에게 옆에 있던 인턴이 한마디 했다. “쏘리” 예상대로 환자는 심각한 병의 진단 없이 내시경을 마치고 위층 병동으로 갔다. 그곳은 흑인 간호사들이 많은 곳이라서 함부로 소리 지르기 힘든 곳이다. 소리치는 '갑'에게 어떤 '을'이 손을 쓴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의 의료시설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 거기서 거기다. 미국이 좋다지만 의료보험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고 혹 있다 해도 그걸 받아주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 의사소통도 문제다. 한국은 불친절하다 해도 일단 말이 통하고 국가의료보험제도로 언제나 아무 병원에 갈 수 있다.

그래도 어느 곳이든지 환자를 위해 편견 없이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이 있다.
환자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의료진이 인정받고 존경받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닥터 프리즈너처럼 환자를 구하다 복수의 길로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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