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긍정적 사고

2019-04-08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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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사고(肯定的 急考-Positive Thinking)란 말은 한때 사상계를 휩쓸었던 말이다. 심리학은 물론 종교계도 대유행이 되었던 단골 설교 주제였다.사람들을 많이 대해 보면 생각과 말이 긍정적인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남의 말을 일단 부정해 놓고 말을 잇는 이상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를 계속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내 말을 눈을 반짝이며 자세히 들어주고 자기의 말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심리학자들은 생각이 긍정적인 사람이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밝고 에너지가 증대한다는 것이다. 즉 정력적이고, 행복해진다고 말이다. 긍정적 사고가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 된다는 말이니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현대사회는 스트레스가 많다고 모두 말한다. 심리적 혹은 정신적 압박이 누적되는 사회라는 말이다. 어떻게 스트레스에서 풀려날 수 있을 까? 그 방법이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행동을 가지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얼굴에 나타난다. 이마를 약간 찌프리고 있다든지 어딘가 걱정스런 표정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표정이 밝고 씩씩하게 보인다.


그늘을 보고 양지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팔자가 세다고 한탄하고 광명과 내일을 보지 못한다. 한국인은 우는 소리, 죽는 소리를 평소의 대화에서 너무나 자주 들어왔기 때문에 남의 말을 할인해서 듣는 습성이 생겼다. “요즘 장사 안 돼서 파리 날립니다.”하고 말하면 아직 식생활 정도는 염려 없고 그런대로 비즈니스가 돌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사실 우는 소리를 한다고 갑자기 일이 성취될 것도 아니고 죽는 소리를 한다고 해결책이 생길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그런 과대표현을 하는 것은 동정점수를 받으려는 심리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오래동안 누적된 한국인의 부정적 사고의 산물일 것이다.
기름이 병의 절반쯤 있을 때 “벌써 이렇게 먹었나? 절반도 안 되는 걸!”하고 말하는 것이 부정적 사고이다. 그러나 “아직 절반이나 있군!”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긍정적 사고이다. 역경이나 불행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한이 없으며, 결국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한국인이 기도를 드릴 때 아예 시작부터 눈물어린 음성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그런 애절한 음성이 기도의 음성처럼 굳어진 것이다. 아이들이 징징거리면 부모들은 줄 것도 안 준다. 부모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는 명랑하고 똑똑하게 말해야 들어줄 생각이 든다. 기도도 긍정적인 기도가 좋다. 평안한 생활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 아니라 생활전선을 뚫고 갈 강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많은 복을 주십시사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내 능력에 어울리는 일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무조건 오래 살기를 기도하지 말고 바른 길을 걷도록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흔히 '역리(逆理)의 복음'이라고 말한다. 실패를 건 자에게 성공이 오고, 절망을 건 자에게 희망이 오며, 죽음을 건 자에게 부활(새 생명)이 오고, 눈물을 건 자에게 웃음이 온다는 진리가 역리의 복음이다. 야구에 전력투구(全力投球)거 있다. 투수가 공 하나를 던져도 온 힘을 집중하여 던지는 공이다. 나의 인생도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뜻이 있으면 현실로 이루어진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소망하는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이 곧 믿음이다. 웃는 얼굴이 웃는 낯을 부른다. 다정한 사람의 주변에 친구들이 모인다. 너그러운 사람이 넉넉하게 산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수확이 있다. 부정적으로 생가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동양인의 머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운명론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자는 정말 어리석다. 씩씩하게 전진하자. 그대는 할 수 있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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