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미꽃

2019-04-04 (목) 07:57:31 조태자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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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산넘고 물 건너 꽃샘추위와 얼고 추운 땅을 지나 봄비가 내리고 봄바람이 불면서 비로소 내가 사는 대지위에 찾아온다. 봄비가 내린 대지는 촉촉한 흙위에 꽃을 피우고 봄바람은 잠자고 있던 나무가지들을 흔들어 깨운다. 지구는 우리들을 안고 일년 이라는 세월을 한바퀴 돌아 다시 봄의 대지 위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봄이 오는 것은 우리의 삶과도 많이 닮아 있다.

한국의 봄은 냉이와 달래, 쑥 등…. 산나물들이 시장에 나오면서 시작된다. 어릴적 할머니의 무덤 가까이 가면 어김없이 할미꽃들이 피어 있었다 수줍은듯 고개를 숙이고 연한 회색의 털로 몸을 감싼 할미꽃은 짙은 자주색 꽃으로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색은 여태 내가 보아온 가장 아름답고 고혹적인 자주색꽃 이었다. 그곳에 갈때는 가족과 함께 고모도 갔는데 나에게는 할머니의 묘 이었지만 고모 에게는 친정 어머니가 묻힌 곳 이었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고모가 묘를 붙잡고 어떻게 애절하게 서럽게 우는지 나의 애간장이 다 녹아 내리는것 같아 하염없이 할미꽃만 쳐다 보고 있었다. 봄과 할미꽃과 서럽게 울던 고모는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속에 머물러 있다. 한국을 떠난 이후 한번도 할미꽃을 본적이 없어서 더욱 그리워 지는 꽃 이다.


미국의 4월은 나무에 꽃이 피는 꽃잔치의 계절 이기도 하다. 개나리와 목련으로 시작하는 미국의 봄은 잎이 채 나기도 전에 마른 나무가지에서 피는 꽃들은 그래서 색이 더욱 선명하고 영롱한 빛을 발한다. 벚꽃 역시 화사 하기 그지없다. 그들이 봄의 전령사가 아닐까?

계절의 여왕 5월이 되면 모란이 핀다. 신은 어쩜 그렇게도 황홀하고 매혹적인 꽃을 이 세상에 내어 놓았을까? 여왕 처럼 우아한 꽃들이 피어 있을 때는 비가 오지 말기를 간절히 염원 하였지만 어느날 모란 꽃잎이 하나 둘씩 땅에 떨어지면 나는 아쉽고 쓸쓸한 마음에 어쩔줄을 모른다.

모란이 지면 계절은 여름을 향해 가고 나는 내년 봄 다시 보게 될 모란꽃을 기다린다.
봄이 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시와 노래와 예술이 꽃 피고 대학을 졸업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회 초년생이 된다.

자연은 위대한 생명의 어머니란 말이 있듯이 봄이 되면 땅을 갈고 씨 뿌리는 농부들, 북녁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떼들, 새끼를 낳아 키우는 야생동물들, 산으로 들로 민들레를 캐기 위해 집을 나서는 조선족들 그들 모두 봄과 자연 속에 그들 몫의 시간을 감당해 나간다.

그들 모두 아니 우리들 모두, 생명을 잉태하는 조화롭고 경이로운 자연속에 하늘과 땅과 나무와 돌, 바람과 비…. 그속에서 봄날은 오고 또한 가고 있다.

<조태자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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