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간이 버스정류장

2019-03-24 (일) 10:18:55 박 앤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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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깃대 끝에 매달린 빛바랜 팻말뿐
대기소 한 칸 없는 간이 버스정류장
빈 플라스틱 의자 하나
바람이 불 때마다 중얼대듯 달그락대며
깃대에 매인 채 눈을 맞고 있다

지친 사내 하나 눈을 털어내며
주저앉듯 의자에 앉아
무심히 눈발을 바라보고 있다
그 고단한 몸을 조심스레 받아 안고
그래, 앉아서 기다리라고. 그래도 괜찮아
다독이듯 의자는 혼잣말로 속삭인다

오늘은 폭설, 버스 끊긴 지 오래
이따금씩 휘젓던 바람도, 성글어지던 눈발도
제풀에 꺾여 고요해진 저녁
버텨 줘서 고맙다고
오늘 밤도 잘 견디자고
의자는 더욱 단단히 깃대를 끌어안는다

<박 앤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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